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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쿠팡 '70만 원 오찬'과 사라진 임원의 미스터리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5-12-17 14:58:38
  • 수정 2025-12-17 14:59:21

  • 국감 한 달 앞둔 시점, 뉴스타파 '아빠 찬스' 보도 다음 날 이뤄진 5성급 호텔 회동
  • 김병기 측 "대관 업무 주의 준 것" 해명에도 녹취록엔 "불편한 진실" 언급 남겨
  • 회동 직후 전직 보좌관 출신 임원 해고… '제보자 색출'과 '국감 방어'의 교환 의혹

의원총회 참석하는 김병기 원내대표




2025년 9월,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를 둘러싼 이른바 '아빠 찬스' 편입 의혹과, 뒤이어 터져 나온 쿠팡 경영진과의 고액 오찬 회동이 시기적으로 맞물리며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기업을 매개로 한 새로운 형태의 '보복성 인사 청탁' 의혹으로 비화하고 있는 이 사건은 17일 공개된 녹취록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뉴스타파 보도 다음 날, 서류가방 들고 호텔로 향한 원내대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9월 초의 긴박했던 타임라인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9월 4일, 뉴스타파는 김병기 원내대표의 차남이 숭실대 계약학과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김 의원실 보좌진들이 사적으로 동원됐다는 의혹을 최초 보도했다. 김 원내대표 측은 즉각 "가짜 뉴스"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주목할 점은 바로 다음 날인 9월 5일의 행보다. 김 원내대표는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 29층 룸에서 쿠팡 박대준 대표, 민병기 대외협력총괄 부사장과 오찬을 가졌다. 자신을 향한 치명적인 도덕성 검증 보도가 나온 지 불과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통상 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는 여당 원내대표가, 국정감사 피감기관의 대표와 2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밀실 회동을 가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날 오찬 비용은 약 70만 원이 결제됐다. 김 원내대표는 해명 자료를 통해 "수행원 등 최소 5명이 식사했고, 본인은 3만 8천 원짜리 파스타를 먹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고급 호텔의 독립된 룸을 이용하면서 수행원까지 동석해 식사했다는 해명은 통상적인 의전 관례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식사 도중 배석자가 자리를 비우고 김 원내대표와 박 대표가 단둘이 대화한 시간이 존재했다는 증언은 이날 만남의 목적이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17일 올라온 보좌관들의 익명 계정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은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앰배서더 호텔의 '3만 8천원 파스타 해명'을 제대로 박살내고 있다. 



"이름 팔지 말라"는 경고인가, "잘라내라"는 압박인가


이날 회동의 핵심 쟁점은 김 원내대표가 지참한 '서류가방' 속 자료의 실체다. CBS노컷뉴스 등의 취재를 종합하면, 김 원내대표는 준비해 온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 쿠팡 경영진에게 직접 제시했다. 김 원내대표 측은 이에 대해 "쿠팡에 입사한 전직 보좌직원이 내 이름을 팔고 다닌다는 얘기가 있어 주의를 줬을 뿐이며, 당시 내가 받은 피해 자료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17일 공개된 박대준 당시 대표의 녹취록은 김 원내대표의 해명과는 결이 다르다. 박 대표는 회동 이후 회사 고위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김병기 의원이 뭔가를 보여줬는데, 이 불편한 진실을 나도 모르고 회사도 모르길 바랐다"며 "내 관심이 회사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어 외면했다"고 토로했다. 단순한 '사칭 주의' 경고였다면 기업 대표가 이를 두고 '재앙'이나 '불편한 진실'이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이는 김 원내대표가 제시한 자료가 특정 인물의 거취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이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원내대표가 뉴스타파 보도의 제보자로 자신의 의원실 출신이자 당시 쿠팡 임원(상무)으로 재직 중이던 A변호사를 의심했고, 이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로 김 원내대표는 보도 이전인 6월경부터 정보 유출을 의심해 전직 보좌진들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등 '내부 단속'에 나선 정황이 확인된 바 있다.


회동 후 사라진 임원, 그리고 국감 방어의 상관관계


오찬 이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청탁 의혹'을 심증 이상의 단계로 끌어올린다. 회동 직후, 김 원내대표의 보좌관 출신인 쿠팡 임원 A씨는 사실상 해고 통보를 받고 회사를 떠났다. 임용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쿠팡 측은 자진 사임 형식을 취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사자 주변에서는 외압에 의한 비자발적 퇴사라는 주장이 일관되게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당시 쿠팡은 창업주 김범석 의장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 문제로 사활을 건 방어전을 펼치고 있었다. 쿠팡은 노동자 사망 사고, 블랙리스트 의혹, 정산 지연 사태 등 악재가 겹쳐 국회의 집중 타깃이 된 상태였다. 거대 야당의 원내대표로서 국감 증인 채택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김 원내대표와, 국감 리스크 해소가 절실했던 쿠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부적절한 거래'가 성립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김 원내대표는 '눈엣가시'인 내부 고발자 의심 인물을 쿠팡의 손을 빌려 축출하고, 그 대가로 기업의 국감 리스크를 관리해 주는 식의 묵시적 담합이 있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다. 실제로 이후 전개된 국정감사 과정에서 쿠팡에 대한 공세 수위나 증인 채택 양상이 당초 예상보다 완화되었다는 평가도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한다. 


끊이지 않는 '표적 감시' 정황


김 원내대표가 해당 임원 A씨를 지속적으로 예의주시해 왔다는 정황은 지난 11월 국회 운영위원회 사태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언론 카메라에 포착된 김 원내대표의 텔레그램 메시지에는 "법사위 서영교 의원이 대한변협 회장 및 쿠팡 임원 A씨와 식사를 한다"는 보고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미 퇴사한 전직 보좌관의 동선과 만남 상대를 원내대표가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김 원내대표가 A씨를 단순한 전 직원이 아닌 '관리 대상' 혹은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사태는 식사비 70만 원의 김영란법 위반 여부를 넘어선다. 국정감사라는 헌법상 권한이 사적인 보복이나 입막음을 위해 남용되었는지, 그리고 기업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부당한 인사 조치를 단행했는지가 핵심이다. 만약 인사 청탁 사실이 입증될 경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및 업무방해죄 성립도 가능해 보인다. 수사 기관의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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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2-17 16:39:03

    구린 데가 있으니까 감시하고 위협하고, 결국 자르는 것까지 성공했나 본데요. 김병기가 권력으로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지 흥미진진하네요.기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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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scks2ek2025-12-17 15:29:34

    정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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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2-17 15:09:33

    넘 추하네요.
    복마전도 아닌게 복마전보다 더 구린 냄새를 풍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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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2-17 15:09:19

    복잡한 사건들 잘 풀어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쟤들은 왜 저러고 사는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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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페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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