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부처 업무보고 발언 (연합뉴스)
여당은 최근 공무원이 소신 있게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며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입법 예고했다. 76년 만에 ‘복종의 의무’ 조항을 삭제하고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로 바꾼다고 했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말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홍보물이 잉크도 마르기 전에 세종시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업무보고 자리에서 "행정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지휘 체계"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권한만 누리고 책임 안 지는 건 도둑놈 심보"라며 누군가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타깃은 명확했다. 지난번 회의에서 면박을 주었던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이다.
상황이 기묘하다. 한쪽에서는 수평적 문화를 만든다며 ‘복종’이라는 단어조차 법전에서 파내고 있는데, 국정 최고 책임자는 군대 점호 시간처럼 ‘상명하복’을 외친다. 이 사장이 대통령의 지적에 공개적으로 해명하자, 이를 "거짓말이 실력인 정치판"에 빗대며 입을 막았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의견을 내라더니, 막상 의견을 내니 "도둑놈" 취급이다.
더 심각한 지점은 대통령이 이 사장을 공격하기 위해 가져온 근거다. 대통령은 "기사 댓글을 보니 공항공사가 하는 게 맞다더라"며 "대통령인 나도 댓글 보고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관세청이 공항공사에 위탁하는 MOU를 맺었다"는 댓글 내용을 읊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산하 기관의 업무 분장과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댓글창을 뒤진다. 보고 라인이나 감사 시스템은 멈춘 것인가. 백번 양보해서 댓글을 볼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대통령이 굳게 믿은 그 댓글 내용조차 '팩트'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외화 반출 단속이나 수사권은 관세청의 고유 권한이다. 이는 공권력이 가진 사법적 권한이라 MOU(양해각서) 종이 한 장으로 공기업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보안 검색을 돕는 협조와, 법적 책임을 지는 주체는 엄연히 다르다. 상식적인 행정가라면 MOU가 상위법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 대통령은 "MOU 맺었으니 네 책임"이라는 비전문가의 부정확한 댓글을 진실로 믿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공개석상에서 공기업 사장을 "책임 안 지는 도둑놈"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대통령은 '가짜 뉴스'에 가까운 댓글에 낚여서 헛발질을 한 셈이다.
이 사장을 몰아내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방식이 너무 촌스럽다. 나가라고 말할 명분이 부족하니 업무 파악 미숙을 트집 잡는데, 그 근거가 고작 '댓글'이다. 그래 놓고 "국민은 1억 개의 눈과 귀로 지켜본다"고 했다. 그 1억 개의 눈이 보고 있는 건 이 사장의 무능이 아니라, 전 정권 인사를 쫓아내려 안달이 난 권력자의 조급함이다.
법전에서 ‘복종’을 지우겠다고 선전하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댓글로 국정을 파악한다는 고백을 보고있자니 시장 시절부터 공무원들 닥달해 댓글을 생산시키던 인물 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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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