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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통령이 『셰셰』 할 수 없는 이유
  • 박주현 칼럼리스트
  • 등록 2025-06-05 09: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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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10위권 경제대국도 한순간에 마비 시킬 수있는 '슈퍼파워'

트럼프의 한마디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적 쓰나미


나도 이런 얘기하기에는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력, 강력한 문화콘텐츠 보유국인 한국의 위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정치 중립적 외교로 미국과 중국 사이를 줄타기할 수 있던 시절은 지나버렸고, 사실상 미국, 그것도 트럼프의 말 한마디면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는 취약성도 인정하기 싫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그 일례가 내년에 편입확정된 WGBI다.


한국이 FTSE Russell의 World Government Bond Index(WGBI) 편입을 확정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 편입 시점이 2025년 11월에서 2026년 4월로 연기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일본 투자자들의 기술적 요구사항 때문이라고 하지만, 정치적 불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실제 배경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벌어지고 있는 한미 외교적 긴장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가 직면한 것은 단순한 외교적 불편함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지수 편입의 이중적 함정


WGBI는 전 세계 2조 5천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펀드가 투자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벤치마크다. 한국의 편입이 확정되면서 최대 670억 달러(약 90조원)의 자금 유입이 예상된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하지만 이 장밋빛 전망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숨어있다. 편입이 확정되었다고 해서 글로벌 펀드가 즉시 한국 국채를 매수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FTSE Russell이 매년 4월에 실시하는 정기 리뷰다. 이 리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친중 국가"로 규정하며 글로벌 펀드들에게 소견을 밝힌다면, 편입 결정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제재로 인해 JP Morgan의 신흥시장 채권지수에서 완전히 제외되었고, 중국 기업들도 미국의 정치적 압력으로 FTSE 지수에서 추방된 바 있다.



70조원 투매의 악몽


만약 한국이 WGBI에서 제외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편입 기대감으로 이미 매수 예약된 채권들과 연관 투자상품들을 포함해 최소 70조원 어치의 채권이 시장에 일시에 투매될 것이다. 이는 보수적인 추정치다. 실제로는 투자 매력 상실로 인한 추가 매도 압력까지 고려하면 그 규모는 2~3배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사례를 보면 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다. 2022년 3월 러시아 국채는 제재 이전 대비 80% 이상 폭락했고, 2029년 만기 30억 달러 채권은 100달러에서 18달러로 급락했다. 한국의 경우 경제 규모와 금융시장 통합도를 고려할 때 그 충격은 더욱 클 수 있다.


고환율의 공포, 2000원 시대의 가능성


채권 투매는 국채 금리 급등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원화 가치 폭락으로 연결된다. 이론적으로 달러당 2000원을 넘어서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이런 고환율을 막을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신뢰 관계가 훼손된 상황에서는 한미 달러스와프 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캐나다와의 무제한 달러스와프도 기대하기 어렵다.


금리를 역대급으로 급등시키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는 경제를 죽이는 방법만 달라질 뿐 결과는 마찬가지다. 미국 연준은 현재 캐나다, 영국, 일본, 유럽중앙은행, 스위스와만 상설 유동성 스와프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은 2020년 팬데믹 당시 체결했던 600억 달러 규모의 임시 스와프가 2021년 말 만료된 이후 공백 상태다.


경제 시스템의 연쇄 붕괴


외화 유출, 국채 금리 폭등, CDS 확대, 외환보유고 소진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 경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시나리오인지 알 것이다. 해외 투자 자본이 말라버리고,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기둥뿌리가 흔들린다. 그 후에는 어떤 국가도 한국 채권을 사주지 않을 것이다.

2022년 9월 Maurice Obstfeld UC 버클리 교수는 한국이 상설 스와프 협정의 훌륭한 후보라고 평가했지만, 미 연준이 한국만을 위한 배타적 협정을 맺을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이는 한국의 경제적 운명이 미국과의 정치적 관계에 얼마나 직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식에 주한미군 사령관과 미국 대사관을 초청하지 않고 중국 대사만 참석시킨 것은 상징적이다. 미국이 관례적으로 보내던 축하 메시지를 건너뛰고 전화 통화도 하지 않는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중국에게는 한국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만 보낸 상황이다.


굴욕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한국이 처한 냉혹한 현실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삐끗하면 안 되는 이유는 국가적 자긍심이나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와 체급이 다르다는 걸 외면하면 안 되는 현실이다. 트럼프의 한마디가 실제로 나라 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내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대권을 가장 반대하던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 경제 부분이였지만,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그리고 높은 강도의 압박이 온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이 현실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국익을 위한 첫걸음이다. 미국 비자조차 발급이 거부되었던 총리를 포함한 내각과 친중인사로 의심받는 대통령에게 트럼프는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셰셰"할래? "땡큐"할래?


감정에 치우친 외교는 경제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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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6-05 19:03:30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너무 너무 걱정되네요

  • 프로필이미지
    idt4m2025-06-05 14:27:36

    언제나 명문을 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칼럼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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