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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진보의 『선의』를 믿는 사람들 - 1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5-31 08:05:46
  • 수정 2025-08-05 04: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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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독재 예상을 과하다 하는 분들께

<그래픽 : 박주현>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 마술사가 되고 싶었다. 온갖 카드 트릭을 연습했고, 동전을 사라지게 만드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어떤 마술보다 신기한 걸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5학년, 친구와 포커를 치다가 계속 지자 친구가 갑자기 카드를 섞으며 말했다. "야, 이제부터 투 페어가 풀하우스보다 높아."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친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답했다. "내가 지금 정했다구!!"


그 순간 깨달았다. 이게 진짜 마술이구나. 규칙을 바꾸는 마술. 카드를 숨기거나 동전을 사라지게 만드는 건 그냥 손재주일 뿐이었다. 진짜 마술사는 게임 자체를 바꾸는 사람들이었다.


민주당 당사를 지나칠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난다. 당헌당규라는 게임의 메뉴얼을 펼쳐놓고, 지우개로 슥슥 지워가며 새로 써넣는 모습이 겹쳐 보인다.


첫 번째 지우기. "재판 중인 사람은 출마 불가."  처음엔 눈치가 보였는지 본인이 아닌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지우개를 들었다.

두 번째 지우기. "당대표 연임 금지." 처음이 어려울 뿐 이번엔 당대표 본인이 직접 지웠다.

세 번째 지우기. "대선 3개월 전 사퇴." 역시 당대표 본인의 작품이다.


마치 테트리스에서 블록이 쌓이면 한 줄씩 사라지듯, 규칙들이 필요에 따라 한 줄씩 지워진다. 다만 테트리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게임에서는 한 사람만 점수를 얻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헌법은 함부로 못 건드리지 않을까요?"


정말 그럴까? 당 내부 규칙도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는 사람이 나라 전체의 규칙은 존중할 거라고? 그건 마치 남의 집 창문을 하나둘 깨트리며 침입한 도둑이 "하지만 금고는 안 열어볼게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70년 전통이라는 말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들린다. 전통이라는 건 보통 지키려고 애쓰는 건데, 여기서는 전통을 자랑하면서 동시에 그 전통을 해체하고 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가훈을 소중히 여깁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가훈을 매일 새로 쓰는 집안 같다.


더 무서운 건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갑자기 "이제부터 손으로 공 잡아도 됩니다" "골대 크기를 두 배로 늘립니다" "상대팀은 선수 5명만 뛰세요"라고 연달아 발표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때 관중석에서 누군가 "하지만 경기장 크기는 절대 안 바꿀 거예요"라고 안심시킨다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규칙을 바꾸는 사람들에게 바꿀 수 없는 규칙이란 없다. 단지 아직 손대지 않았을 뿐이다. 그건 물리 법칙이다. 중력처럼 당연한 일이다. 다만 순서와 타이밍의 문제일 뿐이다. 먼저 내부 연습용 규칙부터 바꿔보고, 손에 익으면 본격적인 규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나치친위대라는 표현도 과하지 않다. 70년 민주정당의 역사가 한 사람을 위한 호위무사로 전락했으니까. 탄핵 31명, 검사 고발, 판사 고발. 이 모든 게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방패막이다. 민주당이 아니라 '이재명당'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간판만 민주당이고, 실상은 개인숭배 조직이니까. 아니라고?


어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범야권 의원 21명이 이준석 제명안을 발의했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저녁에 보스가 나섰다. "당에서 한 일이 아니다. 당 차원이라면 이준석 후보 제명을 당론으로 하든지, 이재명이 지시해서 하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완벽한 조폭식 꼬리 자르기다. 부하들이 알아서 눈치껏 한 일이니 보스는 모른다는 것이다. 마치 조직의 활동대장이 "형님 지시 받고 한 게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이게 바로 완벽한 권력 구조다. 논란과 희생은 아래로 흘러가고, 공로와 이익은 위로 올라간다. 보스는 항상 깨끗하다.


더 기가 막힌 건 이들이 내세우는 가치들이다. 유시민은 노동자를 비하하고, 여성을 차별하고, 학벌로 사람의 등급을 나눴다. 매불쇼에서는 설난영 여사의 외모를 조롱했다. 이름표에는 '진보'라고 쓰여 있지만, 실제로는 진보의 가치와 가장 거리가 먼 차별의식이 기본장착된 입테러 탈레반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진보는 오직 한 사람을 향한 진보다. 그 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도, 여성도, 모든 가치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애저녁에 마술사의 꿈을 포기했다. 진짜 마술사들은 이미 민주당에 다 가 있더라. 규칙을 바꾸고 가치관을 내다버리는 마술사들 말이다. 그들 앞에서 카드 트릭이나 동전 마술 따위는 유치원생 장난감 수준이다. 이들은 당헌당규부터 시작해서 언젠가는 헌법까지 자기 손바닥 안에서 주무를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마술에는 한 가지 불변의 법칙이 있다. 관객이 속임수를 알아차리는 순간, 마술은 끝난다.

그 순간이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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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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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bteap2025-06-01 11:11:39

    민주당이 뭘 해도 절대선이라 믿는 자들 때문에 범죄자에게 먹힌 겁니다. 민주당이라는 그 좋은 그릇을 똥통으로 만들었다는 걸 제발 자각하길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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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01 09:20:59

    이번 대선에는 여전히 속고 있는 관객들보다 속임수를 알아차린 관객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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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31 14:40:44

    당헌당규를 제 입멋대로 바꾸는 건 연습일 뿐이죠. 이미 자기한테 유리하도록 선거법도 뜯어고치고 있는데 헌법인들 그의 손에 바뀌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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