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초, 직립보행을 포기하는데 걸리는 시간
세계는 단 한 순간에 단절된다. 그것은 예고도 없이, 어떤 전조나 징후도 없이, 링 위에서 떨어진 그 찰나의 순간에 찾아왔다. 중력은 공평하고 무자비했다. 세 가닥 로프 넘어 경기장 바닥에 척추가 부딪히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나의 시간은 정지했다. 어제까지 140kg 거구를 들어 메치던 나의 육체는, 이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축 늘어진 고깃덩어리로 전락해 있었다. “Is he okay?” 캐나다에서 온 레슬러가 락커 룸에 누워있던 나를 한번 쳐다보니 스윽 밖으로 나가버렸다.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의사는 건조한 목소리로 나의 상태를 설명했다. 의학 용어들은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내 귀에는 마치 그저 동해안 먼바다의 파도 소리처럼 아득하게 들렸다. 2005년의 가을, 나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로그아웃된 채, 방바닥이라는 좁고 깊은 우물 속에 갇혀버렸다.
0.5초에서 1.5초? 아니다. 0.9초 정도였을 것이다. 나는 천장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포기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란 고작 1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창업 1년 차, 직원 4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장이라는 직함은 이제 낡은 외투처럼 무거웠다. 나는 가만히 누워 내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내 몸에 붙어 있지만 나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그러나 전원이 꺼진 로봇의 다리 같았다. 상실감은 통증보다 늦게, 그러나 훨씬 묵직하게 찾아왔다.
내가 누워있는 곳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는 3미터였다. 하지만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나에게 그 3미터는 시베리아의 설원보다 멀었다. 배설의 욕구가 찾아올 때마다 나는 굴욕과 싸워야 했다. 팔꿈치로 방바닥을 찍으며 짐승처럼 기었다. 장판 위로 비릿한 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비루한 몸부림이었다. 나는 그 비루함을 견딜 수 없어 자주 눈을 감았다. 우물 바닥은 어둡고 축축했다.
그날 오후는 유난히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시간이었다. 초인종이 울리고 부모님이 들어오셨다.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방문이었다. 대림동의 작은 아파트, 어지러운 약봉지들과 땀 냄새 섞인 이불, 그리고 그 사이에 널브러져 있는 서른 살의 아들.
어머니는 문지방을 넘자마자 입을 틀어막으셨다. 곡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다. 아버지는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 내 머리맡에 앉으셨다. 그리고는 이불을 걷고 감각이 없는 내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하셨다.
아버지의 손은 거칠었다. 그 손바닥이 내 죽은 살 위를 오르내렸다. 쓱, 쓱. 마른 살이 비비는 소리만이 방 안의 정적을 채웠다. 아버지는 "괜찮다"거나 "힘내라"는 상투적인 위로를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마치 간판도 없는 시골 오토바이 센타의 주인장이 침수되어 움직이지 않는 엔진을 만지듯이 내 다리를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나는 아버지의 정수리가 휑하니 파인 것이 보였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감각이 없는 다리 대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솟았다. 그것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어떤 침묵에 가까웠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묵묵히 밥을 지으셨다.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 도마 위를 두드리는 칼질 소리. 밥 짓는 냄새가 계란 후라이 냄새가 미군부대에서 가져온 쏘세지 볶는 냄새가 방 안의 비릿한 땀 냄새를 덮었다. 부모님은 내게 밥상을 차려주시고는, 해가 질 무렵 말없이 돌아가셨다. 현관문이 닫히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아버지가 주물렀던 다리를 만져보았다.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온기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살아야 한다. 밥을 먹었으면, 살아야 한다."
나는 다시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우물 바닥에서 썩어갈 수는 없다. 이 만약 영화라면 지금 이 장면은 지루한 롱테이크로 이어지고 있는 절망의 시퀀스일 것이다. 나는 이 지루한 컷을 끊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했다. 편집이 필요했다.
문득, 2차 대전 당시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탈출한 독일군 포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영하 40도의 추위, 끝이 보이지 않는 툰드라. 탈출 확률 0%의 지옥. 그곳을 빠져나온 남자의 무기는 지도도 나침반도 아니었다. 주머니 속의 조약돌 열 개였다.
그는 왼쪽 주머니의 돌을 오른쪽으로 하나씩 옮기며 걸었다. 열 개가 다 옮겨지면 다시 반대로. 그의 뇌는 '수천 킬로미터의 탈출'이라는 거대한 공포 대신, '돌멩이 하나 옮기기'라는 사소한 게임에 집중했다.
거대한 목표는 인간을 압도하지만, 사소한 목표는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 인간은 ‘무한’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발자국은 이해한다. 나에게도 돌멩이가 필요했다. 내 인생의 시베리아를 건너게 해 줄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돌멩이.
나는 그것을 '맥도날드 햄버거'로 정했다.
왜 하필 햄버거였을까? 나는 문명의 맛이 그리웠다. 따뜻하고 폭신한 참깨 빵, 그 사이에 끼인 두툼한 패티, 혀를 자극하는 피클의 산미, 그리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콜라의 당분. 그것은 내가 건강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일상의 상징이자, 내가 돌아가야 할 세계의 맛이었다. 내 방에서 맥도날드 매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1만 광년쯤 떨어져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곳에 가기로 했다. 배달이 아니라, 내 발로 걸어서.
몸 뒤집기, 기어가기, 벽 짚고 앉기, 기립 그리고 걷기.
이것은 훈련이 아니라 투쟁이었다. 나는 벽에 머리를 박고 상체의 반동을 이용해 하체를 넘겼다. 척추가 비명을 지르고 관절이 삐걱거렸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눈을 찔렀다. 한번에 1센티미터. 달팽이보다 느린 속도였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장판에는 내 손톱 자국이 처절한 벽화처럼 새겨졌다.
고통은 정직했다. 땀을 흘린 만큼, 아주 미세하게 감각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발가락 끝에서 전기가 통하듯 찌릿했고, 그다음에는 허벅지 근육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그것은 마치 깊은 겨울잠에서 깬 곰이 기지개를 켜는 것과 같았다. 타닥 타닥 꿈쩍도 안하던 엔진 안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나는 벽에 붙여놓은 종이에 매일의 성취를 기록했다. 붉은 사인펜으로 줄을 그을 때마다, 나는 내 주머니 속의 돌멩이를 하나씩 옮겼다.
인간은 '무한'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 발자국은 이해한다. (AI생성 이미지)
그 과정은 지루했다. 때로는 너무나 지루해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버지의 거친 손바닥을 기억했다. 묵묵히 내 다리를 문지르던 그 반복적인 노동의 숭고함을. 그래, 삶은 결국 반복이다. 밥을 먹고, 싸고, 자고, 다시 밥을 먹는 것. 그 지겨운 루틴을 견디는 힘이 곧 생명력이다. 나는 그 지겨움을 사랑하기로 했다.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디데이가 왔다.
새벽 5시. 나는 현관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공기는 차가웠고, 도시의 냄새가 났다. 매연과 먼지, 그리고 대림역 치킨집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어젯밤 진한 여흥의 냄새. 복도에서 창틀을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땅을 밟았을 때, 보도블록의 요철이 신발 밑창을 통해 전해졌다. 그것은 살아있는 땅이 주는 감촉이었다. 축복이었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절뚝거리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무관심이 오히려 고마웠다. 나는 그저 도시의 배경속에 섞여 걷고 싶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 무릎이 꺾일 뻔했다. 난간을 잡은 손에 핏줄이 섰다. "할 수 있다. 돌멩이 하나만 더."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철이 들어왔다. 쇳덩어리가 레일을 긁는 소음이 오케스트라의 튜닝 소리처럼 들렸다. 이렇게나 반가운지 몰랐다. 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보았다. 전철이 도림천을 지날 즈음이었다.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파트 숲 사이로 빛이 산란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멈췄다. 내가 그동안 링 위에서 보았던 조명보다, 동해의 일출보다, 그 어떤 영화의 클라이맥스보다 아름다운 빛이었다. 눈물이 났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내가 저 빛을 다시 볼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이 벅찼기 때문이었다.
강남역 7번 출구 밖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간신히 뚫고 올라가 맥도날드 매장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딸랑" 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익숙한 튀김 기름 냄새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카운터 앞에 섰다. 내 몰골은 땀에 젖어 엉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턱을 들고, 내 인생에서 가장 당당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빅맥 세트 하나 주세요. 먹고 갑니다. 아 참 콜라는 제로콜라로 부탁합니다."
쟁반을 받아 들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트레이가 춤을 췄다. 점원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패배가 아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 또한 용기다. 테이블에 앉아 햄버거 포장을 벗겼다.
양상추 조각이 떨어졌다. 나는 햄버거를 두 손으로 쥐고 크게 베어 물었다.
와작.
입안에서 불꽃놀이축제가 벌어졌다. 고기 패티의 육즙과 마요네즈의 기름기, 빵의 탄수화물이 뒤섞여 혀를 강타했다. 턱관절이 움직이고, 침샘이 폭발했다. 식도가 꿀렁이며 음식물을 넘겼다. 위장이 뜨겁게 반응했다.
맛있다.
그것은 단순히 5,000원짜리 패스트푸드의 맛이 아니었다. 그것은 승리의 맛이었고, 생존의 맛이었으며, 내가 다시 직립보행하는 인간으로 복귀했음을 알리는 신고식이었다. 나는 우적우적 씹었다. 짐승처럼, 그리고 헐크 호간처럼 안드레 더 자이언트처럼 안토니오 이노키처럼.
트레이에 올려진 유기물들을 완전히 비우고 매장을 나섰다. 아침 햇살이 정수리로 쏟아졌다. 배가 불렀다. 다리는 여전히 뻐근하고 걸음은 느렸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나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한 번쯤 시베리아에 갇힌다. 실패, 이별, 질병, 혹은 파산이라는 이름의 동토. 그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거창한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머니 속의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오늘 점심에 먹을 맛있는 밥을 생각하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사소한 일을 처리하는 것. 그 보잘것없는 반복이 결국 우리를 구원한다.
아버지가 말없이 내 다리를 주무르셨듯, 나도 내 삶을 주무르며 나아갈 것이다. 천 발자국에 돌멩이 하나.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따뜻한 햄버거 가게에, 혹은 우리가 꿈꾸던 어떤 목적지에 닿아 있을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잡히는 것은 없었지만, 내 손끝에는 단단한 돌멩이 열 개가 쥐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자, 이제 다음 돌멩이를 옮길 시간이다. 밥값을 하러 가자.
김남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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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목표는 인간을 압도하지만, 사소한 목표는 인간을 움직이게 한다.
김남훈 선수, 기자, 칼럼리스트, 작가님
존경스럽습니다. 새해 첫 날 제 돌멩이를 챙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