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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변 #1758] 사면 앞의 두 사람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5-08-10 09:48:28
  • 수정 2025-08-10 09: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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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행정부 수반 + 국가 원수

헌법에는 두 명의 대통령을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행정부 수반, 다른 하나는 국가 원수다.

국가 원수를 누구로 할 것인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 헌법은 행정부의 대표(대한민국 헌법 제66조 제4항)가 국가의 대표를 겸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66조 제1항). 따라서 호칭은 대통령으로 같지만 그 업무는 구별된다. 이를 헌법 교과서에선 '대통령의 이중적 지위'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한다(제104조). 엄연한 삼권분립 국가에서 사법부 구성을 행정부 대표가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여기서 대통령은 국가 원수를 말한다.

대통령은 법률의 효력이 있는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다(제76조). 법률 제정은 입법부(국회)의 권한이다. 엄연한 삼권분립 국가에서 행정부 대표가 법률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니 여기서 대통령은 국가 원수를 말한다.


사면권(제79조)도 대표적인 국가 원수의 권한이다. 

엄연한 삼권분립 국가에서 사법부가 유죄로 확정한 죄인을 행정부 대표가 풀어줄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행정권이 사법권을 차지하는 계엄권도 국가 원수의 권한이다.

이렇게 국가 원수는 삼권을 초월하는 몇 개의 고유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법률과 재판을 넘나드는 이러한 권한을 왜 줬던 것일까?

국가 원수의 의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이다(제69조). 과거에 하나였던 행정부 권한에서 입법권과 사법권을 추출해 분리한 이유도, 서로 견제하고 협조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집중된 권력은 국민을 괴롭히는 데 용이할 뿐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처벌법을 만들어 재판과 형벌 집행까지 일사천리로 하였다. 국민들의 선택은 절대 권력에 복종하고 아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반기를 들고 쟁취해 낸 것이 권력 분산이다. 하나의 괴물 같은 권력을 쪼개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 국민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인류의 역사는 중세와 근대로 나뉘었다. 전 지구적 사건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일부 권한은 그대로 두어 삼권분립의 예외로 삼았다. 실수가 아니라 당연히 이 또한 권력 분립을 한 이유와 같다.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을 위해 사용할 것을 조건으로 삼권을 초월한 왕의 권리로 남겨둔 것이다.


그러라고 준 사면권이 아닌데?

그래서 사면권의 행사는 이러한 인식 속에 무거운 책임감으로 신중하게 해야 한다. 엄청난 권한으로 보이지만 국민을 위해 국가 원수가 짊어져야 할 고독한 십자가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국민에게 이로울 것인지,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할 고뇌를 국가 원수에게 부여한 것이다. 생각이 다른 국민의 저항과 반감을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아픈 역할인 것이다.

실제 사면권은 국민의 단합과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주는 방향으로 사용되었다. 국가 경제에 기여했던 기업가들을 사면하면서 국민 경제 부흥에 열중하도록 독려하거나, 정치인들의 권력 투쟁으로 갈라진 민심을 봉합하기 위해 정적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는 것도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선거에서는 갈라져 싸웠지만, 국가 원수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모든 국민을 포용해야 하는 자리이다. 국가 원수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순간 국가의 미래는 없다. 그래서 모든 권력과 정치적 입장을 초월해 국민을 하나로 단합할 구심점으로 국가 원수의 권한을 헌법에 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이슈가 된 전직 대통령(이명박, 박근혜)에 대한 사면은 그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면권의 본질에 잘 맞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이미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진 전직 대통령들에게 끝까지 물리적 단죄까지 하는 것은 이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감정적으로 배격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를 포용해 국가적 단합을 도모하라고 둔 것이 국가 원수의 사면권이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 임기 전에 이들의 사면을 고려하는 것은 정치 상황상 정해진 수순과 같았다. 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력에게는 저항감이 클 수 있지만(나도 그랬다) 국가 운영을 감정에 기대어 할 수는 없다. 편 갈라 싸우다 내일 망해도 되는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언론과 정치는 이를 순순히 두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사면을 가지고 짓궂은 장난을 친 것이다.


사면 앞의 두 사람 (그래픽=가피우스)

꼭 필요했던 사면에 비겁했던 자 누구?

당시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는 이낙연이었다. 이재명은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언론은 이들에게 사면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정치를 권력 투쟁으로 여기는 대중의 입장에서 사면이 가진 깊은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사면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것은 매우 고약한 언론의 습성에 기인한다. 그러나 대권을 꿈꾼다면 사면에 관한 소신을 말해야 할 의무도 있다. 사면권은 전리품이 아니라 십자가다. 이른바 왕관의 무게. 이를 피하는 자는 지도자의 자격이 없는 기회주의자에 불과하다. 언론이 아무리 고약해도 지도자는 이를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난 유심히 이를 살폈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낙연은 왕관의 무게를 감당했고, 이재명은 요리조리 대답을 회피하며 여론의 간을 봤다. 이낙연의 워딩은 “국민 통합을 위한다면 연내 적절한 시기에 사면 건의를 해보겠다.”였다. 여기서 ‘국민 통합을 위한다면’이라는 표현은 정확히 사면권의 본질에 부합한다. 그러라고 국가 원수에게 준 것이 사면권이기 때문이다. 이낙연은 질문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비겁하지 않았다.

내가 더 인상 깊게 생각한 부분은 따로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사면은 정치적·역사적으로 정해진 수순과 같았다. 이것이 이슈가 되었다는 자체가 이를 방증한다. 이에 대해 이낙연은 “건의해 보겠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정권이 짊어져야 할 부담, 구체적으로는 대통령에게 가야 할 화살을 이러한 화법을 통해 자신에게 완충시킨 것이다. 개인보다 문재인 정부의 안위를 더 챙겼다고 보았다. 말 그대로 정권의 십자가를 자신이 지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반사이익은 철저히 이재명이 받아먹었다. 비겁함의 대가는 화려했고 결국 현재 대통령이 되는 고속도로가 되었다. 감정에 치우친 대중은 이낙연에 대한 대안으로(지지율은 단기간 폭락해 회복되지 않았다) 이재명을 치켜세웠고, 이재명은 모호한 태도로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장남이 집의 빚을 떠안는 동안 둘째가 가업의 이익만 취한 셈이다.


그때의 기회주의자가 사면권을 전리품으로 여겨

내가 이 기억을 소환한 것은 최근 사면에 관한 현 정부의 작태 때문이다.

이재명은 여전하다. 사면권을 십자가가 아닌 전리품으로 여기고 있다. 국민의 단합은커녕 정적에 대해서는 특검을 통해 잔인할 정도로 권력 행사를 하고, 자기 편에 대해서는 부정과 비리로 범벅된 잡범까지 사면 대상에 넣었다. 지극히 공적인 권한을 최대한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다. 국민 눈치도 안 본다. ‘국민의 자유와 복리 증진’이라는 국가 원수의 의무를 보란 듯이 팽개치고 대통령 놀이에 심취해 있다. 이 나라에서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는 이제 무기력한 유물이 되었다. 그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으로 권력을 쟁취하면 그만이다. 정권이 바뀌면 또 보복이 반복되고, 그 틈에 끼인 국민만 불행해진다. 국가의 자원은 정치 투쟁에 동원되어 국가적 동력은 점점 상실될 것이다. 국민의 행복을 목표로 해야 할 정치가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


가롯 유다같은 국민의힘

국민의힘은 더 한심하다. 이러한 사면권 남용에 맞설 생각은 안 하고, 은화 30개에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처럼 싸구려 거래를 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이 무도한 정권의 공범으로서 국민 앞에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국민은 올바른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을까? 정치인들의 선동에 너무나 취약해졌다. 머슴에게 주인이 이리저리 이용당하고 끌려다니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될까? 사회가 발전하면 수준이 올라갈 줄 알았는데, 정치는 과거로 과거로 후퇴하는 것만 같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정치 사기꾼들이 대낮에 활보하며 아무렇게나 칼질을 해대는데도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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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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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12:28:01

    실망시키지 않는 김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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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inp72025-08-10 12:08:51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라는
    진영주의에 고착된 국민 수준이  이재명같은 기회주의자가 판을 치게 만들었고, 민주당원들만 국민으로 여기는 문재인의 침묵이 이낙연을 배신자로 낙인 찍은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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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inp72025-08-10 12:00:40

    국민 대통합을 위한 사면권을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범죄자 카르텔을 형성하는 데에 이용하다니, 정말 개탄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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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11:29:11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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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10:50:41

    침묵을 해석하고 맥락을 살피도록 강제하는 정치가나 지도자를 믿지 않을 생각이다. 오랫동안 참았고 결국 크게 당했다. 신뢰를 착취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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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10:40:58

    문재인대통령 비겁해요. 저 일만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져서.. 이후에도 끝까지 이일에 침묵했죠. 배신감까지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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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10:40:42

    백번 천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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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10:14:32

    제 심정.. 조용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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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10:06:39

    진짜..그때 그 사면 얘기만 아니었어도, 또는 그 누군가가 지금처럼만 했었어도 나라가 이모양 이꼴은 안되었을텐데요..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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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10:00:34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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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10 09:59:52

    언제나 훌륭한 글… 응원합니다.

아페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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