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은 우리 사법제도에서의 ‘법치’의 작동 그리고 ‘상식’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판결 내용의 부실한 논리와 상식을 초월하는 편향은 최근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사법부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깊은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3월 27일 공직선거법 2심 판결 직후 법원을 떠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 연합뉴스)
서울고등법원 형사6-2 재판부는 이 대표의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발언과 '국토부 협박' 발언에 대해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상식적인 법 해석과는 거리가 먼 결정이다. 특히,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고 말한 발언을 이대표가 출연했던 방송 별로 쪼개어 판단한 것도 매우 특이한 경우로 보인다. 호주 출장 단체사진 속 인물들을 잘 보이게 하려고 부분 확대한 것을 이대표 주장대로 '사진 조작' 이라고 판결한 부분은 실소가 나오게 한다.
10년 가까이 업무상 알고 지내며 해외출장과 골프를 같이 했던 사람을 ‘모른다’ 라고 한 발언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제대로 가리지 않고 이재명 측이 꾸준히 주장했던 '인식'의 문제로 치부한 것도 충격적이다. 이재명 대표는 재판에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증인으로 신청해 본인이 '안면인식장애' 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인식' 을 물고 늘어진 이같은 주장이 1심에서는 통하지 않았지만 2심 재판부에서는 인정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직후보자의 거짓말을 거짓이라 판단하지 않은 재판부는 선거의 공정성과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 선거 결과의 왜곡 방지라는 공직선거법의 주요 취지들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 공선법상 허위사실의 처벌이 사라지게 된다면, 앞으로의 선거는 어떻게 될까? 선거판은 거짓말 대잔치가 될 것이다. 유세장이든 방송토론장에서든, 불리한 내용은 ‘모른다’고 하고 비리 의혹은 ‘협박 받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될 것이니 말이다. 누가 더 그럴 듯 한 거짓말을 하느냐가 당선의 관건이 될지 모른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판결이 정치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굴종을 의심하게 한다는 점이다.
유사한 사건의 판례들은 허위사실로 지목된 발언 내용의 ‘사실 여부’를 증거와 증언에 의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 사건의 2심 재판부는 ‘인식’ 의 개념을 더 중요시했고 발언 내용의 사실 여부를 규명하기 보다는 ‘의견 표현’ 으로 해석했다. 이 크나큰 차이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런 판단의 결과로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던 이 대표가 2심에서, 대다수가 예측 못했던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백번 양보해도 조기대선에 대한 정치적 고려가 작용했다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미래권력의 가능성 앞에 도열한 것은 민주당 국회의원들 뿐이 아닌가보다. (사진:TV조선 뉴스 갈무리)
이번 판결은 우리사회의 '보편적 상식과 도덕에 대한 배신'이라는 점에서 또한 뼈아프다.
해외출장에 동행하고 골프도 같이 갔던 직원을 방송에서 ‘몰랐다’고 한 것도 ‘허위가 아니’고, 여러 증인들의 증언을 통해 거짓으로 확인된 ‘직무유기로 협박받았다’는 말도 ‘의견의 표명’일 뿐이라면, 세상의 그 어떤 거짓이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겠는가.
호주 출장길에 가족에게 보낸 영상통화에서 ‘시장님’ 과의 일정과 골프 동행을 자랑한 고 김문기 씨는 이재명의 인식에서 '모르는 사람' 이고, 그와 찍은 사진과 일정을 부인한 이재명의 무수한 말들도 거짓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그것을 보증해줬기 때문이다. 법리가 때로 상식과 충돌할 수 있다지만 이것이 말이 되는가. 이제 무엇이 '거짓말'일 수 있을까. 만약, 이 판결을 바탕으로 이대표가 대통령이라도 된다면 망자의 한과 그 가족의 비통함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라더니, 이제는 '유권무죄(有權無罪)' 가 우리시대의 ‘뉴 노멀’이 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지나치지 않다. 이대로라면 그동안 공직선거법 상 유사한 혐의로 직을 상실한 이들의 죄는 실은 ‘거짓말’이 아니라 이재명만큼의 권력을 갖지 못한 탓이 된다. 크고 작은 법과 사회적 약속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보통사람들이 어제의 판결로 인해 회의감을 갖는 것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앞으로 아이들에게 감히 ‘거짓말하지 말라’ 고 가르칠 수 있겠는가.
윤석열의 계엄과 탄핵의 과정을 견디며 우리는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처절하게 깨닫고 있다. 한 때 '동아시아 최고' 라는 평가를 받았었던 우리의 민주공화국은 지금 어떠한가. 공화국의 반석이라고 믿었던 정부의 기관들과 공인들이 실상은 허술하고 옹졸하며, 권력의 가능성 앞에 공직윤리를 팽개치고 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광장에서 두 편으로 갈려있다. 냉소하며 지쳐가고 있다.
도대체 정치는 무엇이고 법은, 상식과 양심은 또 어디에 있는가. 이재명 대표에 대한 어제 2심 판결은 우리 눈 앞에서 무너지고 있는 6공화국의 가장 추한 폐허, 극복해야 할 우리 시대의 오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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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다2025-03-28 06:51수정 삭제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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