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법무부 차관이 말한 '큰일'이 뭘까?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5-11-11 08:56:59

큰일이 뭘까?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1심 항소 만기일이었던 지난 7일, 이진수 법무부 차관이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전화를 걸어 "큰일 났다. 항소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수사팀과 서울중앙지검(중앙지검), 대검찰청(대검) 지휘부까지 모두 항소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법무부의 답변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결국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이 차관이 언급한 '큰일'은 무엇이었을까.

법조계와 정치권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 '큰일'은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법적·재정적 손실이 아니라, 반대로 검찰이 '항소를 강행'했을 경우 정권이 감수해야 할 '정치적 부담'과 '법리적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민국 검찰의 장례식 (그래픽=가피우스)

'성공한 재판'을 지키려 한 '큰일'


법무부는 대장동 1심 판결을 '성공한 재판'이라고 평가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0일 "원론적으로 성공한 수사, 성공한 재판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권의 입장에서 이 판결은 '성공'이라 불릴 만했다. 김만배, 유동규 등 핵심 인물들에게 징역 8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해  여론의 비판을 잠재우는 모양새를 갖췄다. 특히 유동규 전 본부장 등은 검찰 구형량(징역 7년)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법무부가 '항소 실익이 없다'고 주장할 핵심 명분이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1심 재판부가 이재명 대통령으로 향하는 핵심 연결고리를 법리적으로 차단해 줬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이 대통령이 민간업자로부터 "직접 금품이나 접대를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 이 대통령의 최측근 정진상 전 실장과 직결된 '428억 뇌물 약속' 혐의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배임죄에 흡수된다는 법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진수 차관이 말한 '큰일'은 바로 이 '성공적인' 판결이 항소로 인해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이었던 셈이다. 일선 수사팀의 주장대로 2심에서 '428억 뇌물' 혐의가 유죄로 판단되거나 , 이 대통령의 배임 혐의와 관련된 불리한 법리가 형성될 '불확실성'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의견 제시'로 작동한 '사실상의 지휘'


이 '큰일'을 막기 위한 법무부의 움직임은 신속하고 은밀했다. 정성호 장관은 검찰청법 제8조에 규정된 공식적인 지휘·감독권을 발동하지 않았다. 대신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잘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대검에 세 차례에 걸쳐 전달했다.   


하지만 항소 마감 당일, 법무부 장관이 '친명 좌장' 이라는 정치적 무게를 싣고 보낸 '신중하라'는 의견은 사실상의 지시로 작용했다. 여기에 이 차관의 "큰일 났다"는 전화가 더해지자, 노만석 총장 직무대행은 일선 수사팀과 중앙지검장의 만장일치 항소 의견을 뒤집고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법무부를 넘어선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짙다. 노 직무대행은 검사장들의 반발에 "항소 포기는 용산·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검찰의 기계적인 항소·상고"를 비판한 발언  역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항소 포기의 대가 7413억과 검찰의 항명


정치적 '큰일'을 막은 대가는 즉각적이고 명확했다.

첫째, 7,413억 원의 범죄 수익 환수 길이 사실상 막혔다. 검찰은 총 7,886억 원의 범죄수익 환수를 주장했으나 1심은 473억 원만 인정했다. 검찰의 항소 포기로 나머지 7,413억 원에 대해서는 2심에서 다툴 수 없게 되었다.   


둘째, 피고인들에게 '법적 방패'를 쥐여줬다. 피고인들만 항소한 상태라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 에 따라 2심 재판부는 1심의 징역 8년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피고인들은 '밑져야 본전'인 재판을 하게 된 것이다.   


셋째, 검찰 조직이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정진우 중앙지검장은 "대검의 지시를 수용하지만, 중앙지검의 의견과 달랐음을 분명히 한다"며 사실상 항의의 표시로 사의를 표명했다. 뒤이어 전국 검사장 18명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노 직무대행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했다. 박영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전 전주지검장)은 노 직무대행과 이 차관 등에게 "정권에 부역했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 검찰 내부는 '항명'에 가까운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결국 이 차관이 막으려 한 '큰일'은 '정권의 정치적 부담'이었으나, 그 결정이 초래한 '진짜 큰일'은 7,400억 원대 국고 손실 가능성과 검찰의 사법 정의 및 시스템의 붕괴라는 더 큰 파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프로필이미지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8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ko8ko2025-11-11 21:55:46

    이 일이 정권에 어떤 결과를 안길지 두고보겠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1-11 21:34:06

    팩트파인더가 있어 큰위로가 됩니다.
    좋은기사 항상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1-11 20:15:10

    그나마 살아있는 건 검찰뿐인 듯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1-11 15:36:37

    깔끔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ddongong2025-11-11 14:59:16

    닿기도 전에 뜨겁다고 난리치는걸 보면 사람들은 아아 역시나 어쩐지.. 이러는거 아닐까요.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1-11 14:24:46

    저처럼 눈이 안 좋은 사람에겐 읽어 주기 기능이 없어 아쉽네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1-11 13:00:52

    언론이 안 쓰니.... 이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양 옆의 시선을 막고 자기가 보는 거만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얘기하면 내란 옹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부터하고. 홍위병과 뭐가 다른지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1-11 09:17:43

    그 큰일 막으려다 이텅에게 큰 불똥이 튀어 지지율 곤두박질치고 레임덕으로 쫓겨나길!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이낙연 "피고인 대통령 만들려 법치 짓밟아"... 공무원 사찰 '전체주의' 맹비난 새미래민주당 이낙연 상임고문이 15일 현 정부를 정면 비판했다. 그는 SNS를 통해 정부의 75만 공무원 감찰 시도를 '전체주의'에 빗대고, "민주주의 붕괴"를 경고했다.이 고문은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까지 허물어지려나"라고 반문하며 "피고인 대통령을 무죄로 만들려고 법치주의를 짓밟는 일은 이미 계속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3. 남욱 "내 재산 동결 안 풀면 고소"… 도둑의 오만은 법치의 죽음에서 자란다 검찰의 '항소 포기' 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장동의 '키맨' 남욱이 입을 열었다. "동결된 자산을 풀어주지 않으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 도둑이 되려 파수꾼에게 '내 몫을 빨리 내놓지 않으면 혼쭐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의 극치다.법치(法治)와 법을 이용한 통치....
  4.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5.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6.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7.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10.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