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1심 항소 만기일이었던 지난 7일, 이진수 법무부 차관이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전화를 걸어 "큰일 났다. 항소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수사팀과 서울중앙지검(중앙지검), 대검찰청(대검) 지휘부까지 모두 항소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법무부의 답변을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결국 검찰은 항소를 포기했다. 이 차관이 언급한 '큰일'은 무엇이었을까.
법조계와 정치권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 '큰일'은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법적·재정적 손실이 아니라, 반대로 검찰이 '항소를 강행'했을 경우 정권이 감수해야 할 '정치적 부담'과 '법리적 불확실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민국 검찰의 장례식 (그래픽=가피우스)
'성공한 재판'을 지키려 한 '큰일'
법무부는 대장동 1심 판결을 '성공한 재판'이라고 평가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0일 "원론적으로 성공한 수사, 성공한 재판이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권의 입장에서 이 판결은 '성공'이라 불릴 만했다. 김만배, 유동규 등 핵심 인물들에게 징역 8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해 여론의 비판을 잠재우는 모양새를 갖췄다. 특히 유동규 전 본부장 등은 검찰 구형량(징역 7년)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법무부가 '항소 실익이 없다'고 주장할 핵심 명분이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1심 재판부가 이재명 대통령으로 향하는 핵심 연결고리를 법리적으로 차단해 줬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이 대통령이 민간업자로부터 "직접 금품이나 접대를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 이 대통령의 최측근 정진상 전 실장과 직결된 '428억 뇌물 약속' 혐의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배임죄에 흡수된다는 법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진수 차관이 말한 '큰일'은 바로 이 '성공적인' 판결이 항소로 인해 뒤집힐 수 있는 가능성이었던 셈이다. 일선 수사팀의 주장대로 2심에서 '428억 뇌물' 혐의가 유죄로 판단되거나 , 이 대통령의 배임 혐의와 관련된 불리한 법리가 형성될 '불확실성'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이 '큰일'을 막기 위한 법무부의 움직임은 신속하고 은밀했다. 정성호 장관은 검찰청법 제8조에 규정된 공식적인 지휘·감독권을 발동하지 않았다. 대신 "신중하게, 종합적으로 잘 판단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대검에 세 차례에 걸쳐 전달했다.
하지만 항소 마감 당일, 법무부 장관이 '친명 좌장' 이라는 정치적 무게를 싣고 보낸 '신중하라'는 의견은 사실상의 지시로 작용했다. 여기에 이 차관의 "큰일 났다"는 전화가 더해지자, 노만석 총장 직무대행은 일선 수사팀과 중앙지검장의 만장일치 항소 의견을 뒤집고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법무부를 넘어선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짙다. 노 직무대행은 검사장들의 반발에 "항소 포기는 용산·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검찰의 기계적인 항소·상고"를 비판한 발언 역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항소 포기의 대가 7413억과 검찰의 항명
정치적 '큰일'을 막은 대가는 즉각적이고 명확했다.
첫째, 7,413억 원의 범죄 수익 환수 길이 사실상 막혔다. 검찰은 총 7,886억 원의 범죄수익 환수를 주장했으나 1심은 473억 원만 인정했다. 검찰의 항소 포기로 나머지 7,413억 원에 대해서는 2심에서 다툴 수 없게 되었다.
둘째, 피고인들에게 '법적 방패'를 쥐여줬다. 피고인들만 항소한 상태라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 에 따라 2심 재판부는 1심의 징역 8년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피고인들은 '밑져야 본전'인 재판을 하게 된 것이다.
셋째, 검찰 조직이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다. 정진우 중앙지검장은 "대검의 지시를 수용하지만, 중앙지검의 의견과 달랐음을 분명히 한다"며 사실상 항의의 표시로 사의를 표명했다. 뒤이어 전국 검사장 18명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노 직무대행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했다. 박영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전 전주지검장)은 노 직무대행과 이 차관 등에게 "정권에 부역했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 검찰 내부는 '항명'에 가까운 초유의 사태로 번졌다.
결국 이 차관이 막으려 한 '큰일'은 '정권의 정치적 부담'이었으나, 그 결정이 초래한 '진짜 큰일'은 7,400억 원대 국고 손실 가능성과 검찰의 사법 정의 및 시스템의 붕괴라는 더 큰 파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8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이 일이 정권에 어떤 결과를 안길지 두고보겠습니다
팩트파인더가 있어 큰위로가 됩니다.
좋은기사 항상 감사합니다.
그나마 살아있는 건 검찰뿐인 듯
깔끔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닿기도 전에 뜨겁다고 난리치는걸 보면 사람들은 아아 역시나 어쩐지.. 이러는거 아닐까요.
저처럼 눈이 안 좋은 사람에겐 읽어 주기 기능이 없어 아쉽네요.
언론이 안 쓰니.... 이게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양 옆의 시선을 막고 자기가 보는 거만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얘기하면 내란 옹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부터하고. 홍위병과 뭐가 다른지
그 큰일 막으려다 이텅에게 큰 불똥이 튀어 지지율 곤두박질치고 레임덕으로 쫓겨나길!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