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소설가 한강 덕분에 떠들썩했던 노벨상 시즌이 올해는 이상할 만큼 아무런 기대도, 관심도 없이 조용히 흘러가 버렸다. 이 무심한 고요함 속에서 문득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물론 노벨상을 올림픽 금메달처럼 여기며 국위선양의 기회쯤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개인의 영광일 뿐인 상 하나에 온 나라가 목을 맬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분야에서 결코 무시할만한 나라가 아닌데, 어째서 인류 지성의 최전선이라는 과학상 소식은 이토록 감감무소식일까.
이런 생각과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더 근본적인 기묘함으로 이어진다.
전국에서 가장 머리 좋은 수재들은 모두 의사 가운을 꿈꾸며 의대로 향하는데, 정작 생명을 다루는 필수의료 시스템은 붕괴 직전이라 비명을 지른다. 국회를 채운 엘리트들의 이력은 하나같이 화려하지만, 그들이 빚어내는 정치의 결과물은 국가의 미래가 아닌 서로를 향한 복수와 증오뿐이다. 이 모든 현상은 제각각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유능한 개인들의 역설’이라는 하나의 질병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동일한 증상이다.
그래픽 : 박주현 유능한 개인들이 모인다고 유능한 집단이 되지 않는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성공 신화가 남긴 저주에 발목 잡혀 있다. 박정희 시대의 국가 주도형 불균형 성장 전략, 그 ‘하면 된다’는 구호는 분명 가난을 몰아낸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DNA에 치명적인 독을 주입했다. ‘과정’이나 ‘기초’보다는 ‘결과’와 ‘응용’을, ‘왜’라는 본질적 질문보다는 ‘얼마나 빨리’라는 속도만을 숭배하게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시키는 단 하나의 잣대만이 남아 공동체의 영혼을 남김없이 잠식하고 있다.
과학계의 비극은 이 역사적 유산이 낳은 가장 논리적인 귀결이다. 국가는 더 이상 밤하늘의 별을 보는 과학자에게 투자하지 않는다. 그런 순수한 탐구는 당장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3년 내 상용화 가능한 기술’이라는 족쇄를 채운 연구에만 자원을 쏟아붓는다. 이는 30년 이상 걸려 자랄 거목을 키우는 대신, 당장 시장에 내다 팔 분재를 대량 생산하는 것과 같다. 노벨상은 그런 ‘소명의식’을 먹고 자라는 나무이지, ‘단기 성과주의’라는 비료만으로 키워낼 수 있는 식물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인류의 지평을 넓히는 탐험가가 아니라, 연구비를 따내기 위한 행정가로 전락하며 각자의 전투에서는 승리할지 몰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팀은 인류 지성의 전쟁에서 완벽하게 패배하고 있다.
의대 쏠림 현상은 이 사회의 가치 체계가 얼마나 처참하게 붕괴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투명한 지표다. 막스 베버가 말한 ‘소명으로서의 직업(Beruf)’, 즉 직업을 통해 신의 부르심에 답한다는 근대적 직업윤리는 이 땅에서 완벽하게 증발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오직 ‘수단으로서의 직업’이라는 냉소주의뿐이다. 생명을 구하는 숭고함은 OECD 최고 수준의 소득과 강남의 아파트 시세 앞에서 조롱당한다. 이는 의사 개인의 윤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돈’ 이외의 모든 가치를 패배자의 변명으로 취급해 온 당연한 결과다. 소명을 잃어버린 최고의 인재들이 최고의 기술로 돈을 버는 사회, 그 끝이 무엇일지는 불 보듯 뻔하다.
정치판은 이 ‘각자도생’의 아수라장을 가장 노골적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무대다. 국회에 모인 유능한 전략가들은 국가의 장기 비전을 설계하는 대신, 진영의 생존과 눈앞의 선거 승리라는 전투에만 몰두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분열과 냉소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포퓰리즘의 준동이다. 그들은 ‘돈’ 이외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회의 냉소주의에 올라타, 공동의 규칙과 신뢰를 파괴하고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절망을 바이러스처럼 퍼뜨린다. 이 유능한 용병들은 각자의 진지를 사수하는 전투에서는 승리할지 몰라도,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함선 자체를 침몰시키는 데 복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유능한 개인들의 총합이 왜 무능한 집단이라는 비참한 결과로 귀결되는지를 고통스럽게 목격하고 있다. 각개전투의 승리를 자축하는 사이,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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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비록 좀 돌아 가더라도 결국에는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기만 바랄뿐.
지금 4050이 그렇게 키우거 그런 세상을 만들었잖아. 이재명 지지율이 나오는 집단이 4050이라는데 이 사회가 어떤 곳이지 명확하게 보여줌. 사다리 걷어차기...
정말이지 틀린 말이 한개도 없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나아지는 쪽으로 가고 있으리란 희망마저 없으면...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