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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표결 불성립, 한국 정치 극단주의의 끝을 보다
  • 김선 논설위원
  • 등록 2024-12-08 17:15:57
  • 수정 2024-12-08 22: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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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핵안만 올려놓고 설득도 대화도 안 한 민주당
  • 각자 자기 서사 만들기에 열중하는 정치인들
  • 민생과 국격은 아랑곳 없는 이들의 끝은?

민주당과 야 6당이 발의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어제 12월 7일 오후 5시에 국회 표결에 부쳐졌다. 그러나 정족수 200명을 채우지 못해 투표용지는 개봉조차 못하고 탄핵안은 표결 ‘불성립’으로 마무리됐다. 어제의 사태는 양극단 지지층만 보고 질주해 온 최근 몇 년 한국 정치의 추한 모습이, 국민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가장 극적으로 표출된 사건이었다. 


윤석열 탄핵안 투표 불성립 이후 국회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는 민주당 의원들. (사진: 연합뉴스)

1. 탄핵안 통과를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민주당 

충격적인 윤석열의 불법계엄 사태 이후 가장 먼저 탄핵안을 꺼내든 것은 민주당이었다. 사태 직후 야 6당 공동으로 안을 발의하고 안건처리에 나선 것은 전례(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에 비해 매우 신속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2016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우상호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성급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국힘을 충분히 설득해 ‘적어도 10표는 확보’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도 없이 탄핵안 발의를 너무 빨리 추진한다는 것이다. 

우 전 의원의 걱정대로였다. 5일에 열렸던 민주당 의총에서도 지도부는 ‘빨리빨리’와 ‘될 때 까지’만 강조했을 뿐 찬성표 확보를 위한 전략이나 진지한 논의는 전혀 하지 않았다. 몇몇 의원들이 국민의힘 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질문했지만 이재명 대표는 물론 박찬대 원내대표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고 “의원들 개별적으로 친한 국힘 의원들 있으면 설득하라” 는 정도로 의총이 마무리 되었다. 사실상 아무 전략도, 계획도 듣지 못한 민주당 의원들은 친분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그 상황에서 상대당 의원을 만나 줄 리는 만무했다. 

민주당의 한 보좌진은 “지도부는 속도전에만 열중했을 뿐 국민의힘 의원들을 설득할 생각은 아예 안 했다. 우리당 의석 수가 많고 국회 앞 집회에 사람이 몰려 여론압박이 거세지면 국힘에서 몇 명 넘어올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 같다.” 고 전했다. 다른 민주당 당직자는 “표결하는 날 아침에 원내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이번에 안 되면 또 하면 된다’ 는 식으로 말한 걸 보고 놀랐다. 오늘 안 될 것 같다고 해도 절박함을 보였어야 하는 것 아닌가? 평상시에 법안 상정하는 것도 아니고, 탄핵이라는 엄청난 사안에 대해 너무 쉽게 언급해 당 내부에서조차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탄핵이 장난이냐.” 고 비판했다. 



2. 박찬대 원내대표의 뮤지컬 공연? 최악의 제안설명 

박찬대 원내대표의 탄핵안 제안설명은 지켜보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한껏 고양된 표정과 음성으로 그럭저럭 평범하게 제안설명을 이어가던 박 원내대표는 갑자기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하나 둘 호명하기 시작했고 민주당 의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합창하듯 화답했다. 

그 내용과 형식이 모두 너무나 당황스러워 실소가 나오는, 참으로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탄핵안 표결 현장을 라이브로 중계하던 언론사 유튜브의 실시간 댓글 창에도 놀랍다는 조롱과 비판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레미제라블 찍나, 저게 뭐하는 짓인가.” “국민의힘 의원들 이름을 부르지 말고 막후에서 설득해 투표하게 했었어야지.” 

윤석열의 충격적인 계엄선포에 국민들이 충격받고 두려워하는 이 때에, 전략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거대 야당 지도부는 기이한 방법으로 선동에만 열중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힘 의원 명단을 출력한 김에 그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해서 설득했어야 했다. 다수의석의 의회권력을 앞세워 상대방을 호명하고, 조리돌림하는 식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한단 말인가. 


제안설명 전 국민의힘 의원명단을 확인하는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명단을 뽑은 김에 전화라도 미리 돌려 설득하려는 노력은 했던가? (사진: 연합뉴스)

한 국회 출입 기자는 “여야 대화와 협치가 몇 년째 사라졌고 특히 민주당에는 친명계의 판단에 이견을 제기할 사람들이 없어진 상태다." 라고 지적했다. 또한 "초선들도 의회정치에 대한 식견이 없다보니 정치 메시지의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그러니 저런 메시지가 문제의식 없이 나오는 것.” 이라고 진단했다. 한 민주당 전직 의원 또한 박찬대 의원의 어제 제안설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물밑 설득을 해야 할 원내대표가 탄핵안 통과보다는 자기 광내기에 급급해 보였다. 중대한 상황인데 다들 한 마디씩 얹으며 돋보이려다 보니 일어난 참사다. 박 원내대표의 말하는 태도와 모습은 진중한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순수해 보이는 초선의원이 차분하게 제안설명을 그냥 읽기만 했더라도 나았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3. 사적 욕망을 위해 정치를 이용하는 이가 누구인가? 

국민의힘에서는 안철수, 김예지, 김상욱 세 명의 의원만 표결에 참여했고 퇴장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다시 본회의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여러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의 에스엔에스를 통해 국힘의원들에게 ‘돌아오라’ ‘본회의장 어딘가에 국힘 의원들이 갇혀있다는 제보가 있다’ 는 등의 게시물을 올리고 기자 브리핑도 자청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나 의원 개개인이 국힘 의원들을 직접 접촉해 설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언론과 극렬지지자(개딸) 들만을 의식한 언론플레이와 팩트를 확인할 수 없는 '받은 글'만이 저녁 내내 난무했다. 

결국 투표가 불성립되자 이재명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한동훈 대표에게 하는 말이라며 이렇게 발언했다. 

“정치를 그렇게 사적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하면 안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자기부정이자 자기소개다. 이재명 대표가 자기 자신의 욕망과 자기가 저지른 범죄를 항상 남의 일 처럼 말하는 버릇(증세) 이 있는 것은 그의 행적을 오래 보아온 사람이라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인데 어제의 발언으로 그의 적반하장은 어떤 '정점'에 오른 듯 보였다. 시장이 가진 인허가권으로 민간인 사업자에게 수천억 이익을 안겨 준 대장동과 백현동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이재명이고, 공소장에 적힌 것만 1억 6백 여만원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도 이재명 본인인데, 대체 누가 누구에게 정치의 도리와 '사적 욕망'을 운운한단 말인가.  

민주당은 이제 매 주 탄핵안을 상정하고 매주 의결을 하겠다고 한다. 될 때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 임시회도 1주 단위로 개최하고 임시회를 위한 각 상임위 별 안건도 있든 없든 다 끌어모아 국회를 풀 가동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소위 '전략'이다. 노종면 의원은 이에 대해 ‘살라미 전술’ 이라고 자찬했다. '회기를 나누는 살라미 전술로 국힘은 단 며칠 주기로 탄핵에 반대해야 하는 지옥을 경험할 것' 이라고 했다. 정치적 반대세력에게 '지옥을 경험' 케 한다니 아무리 22대 국회의원 수준이 역대 최저라지만 이게 할 말인가. 


'탄핵'이 장난인가. 탄핵은 그 자체로는 국가적 비극이고 대외적으로 국가 위신을 뒤흔드는 대사건이다. 협상과 설득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매주, 될 때까지 탄핵안을 발의한다는 민주당. 그들의 국힘에 경험하게 한다는 지옥은 이미 국민이 겪고 있다. (사진: 노종면 페이스북)


4. 윤석열의 극단 질주, 민주당의 무능에 민생은 이미 지옥이다 

그러나 정작 그 ‘지옥’은 누가 경험하고 있나. '탄핵'은 단지 잘못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다른 정당, 다른 리더가 권력을 차지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이 정도의 사건은 당장 국민의 일상과 민생에 타격을 주고, 국가의 대외적 이미지, 경제적 신인도, 안보, 경제, 외교, 문화, 관광 등 전 분야에서 엄청난 파급력을 미친다. 이미 우리나라의 계엄사태는 미국이 우려를 표명하고 세계가 지켜보는 상황이다. 어제 탄핵안 표결 불성립 이후 외국인의 원화 자산 매각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고 한은이 총력으로 막고 있는 환율상승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우려가 전해진다. 이미 기업들은 해외 거래처의 납품 확인 전화를 받고 있으며 심각한 경기침체 상황에서 환율마저 상승하면 내년 초 부터는 무너지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12월 7일 저녁. 국회 앞을 메운 시위 인파들. (사진: 연합뉴스) 

국가적인 에너지 낭비도 엄청나다. 어제 여의도에는 20만 명의 집회 인파가 몰렸다. 윤석열 탄핵이 공론화 된 이후 최대 인파다.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밤 늦게까지 추위에 떨며 탄핵안 처리 소식을 기다리다 실망하며 귀가했다. 반면 광화문에 모였던 탄핵 반대 집회자들은 ‘이재명 구속’ 을 외치며 환호했다. 윤석열 탄핵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자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정당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 최소한의 정치력마저 잃어버리고, 반대파를 사람으로 보는 도리를 상실한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매주 탄핵안을 발의한다면 또 다시 시민들의 힘에 기댈 것이 뻔하다. 

시민들의 힘과 열정을 착취하며 '국회로 와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윤석열을 쫒아내 달라'고 하는 정치와 정치인이라니. 


윤석열의 무지와 오판, 아둔함으로 국민을 공포에 빠뜨린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임기 내내 아내 김건희 문제로 지리멸렬하던 그가 계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자살'을 택한 것 또한 충격적이다. 윤석열은 마땅히 끌어내려 법적 단죄를 받게 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추악한 선거’였던 지난 대선 이후 수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실종시키고 70년 전통의 정당을 개인 범죄의 방패막이로 전락시킨 민주당의 잘못, 그 중심에 있는 이재명의 해악은 또 어떠한가? 그저 국회의원 한 번 더해 보겠다고, 무수한 혐의로 수사받고 재판받는 피의자를 대선후보로, 국회의원으로, 또 당대표로 밀어올리는데 부역하고 침묵한 이들은 과연 윤석열 보다 떳떳한가? 


자신들의 오만과 잘못으로 민생을 파괴해놓고, 이제는 하늘같은 민심마저 도구로 삼는 

이재명 민주당의 무능과 무책임은 윤석열의 잘못보다 결코 작지 않다. 

민주당이 공언한 탄핵 ‘지옥’이 과연 누구에게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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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nagodory2024-12-08 22:16:14

    정말 속시원한 기사 잘 읽었습니다 박찬대 실제로 발로 뛰는 노력없이 그저 카메라 앞에서 자기 광내기 위한 연기에 또 많이들 넘어가 칭찬하던데 한숨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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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dlsy022024-12-08 22:10:44

    공감되는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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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er2024-12-08 21:51:41

    정신나간 대통령에 대화와 타협이란 정치의 대 전제조차 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이재명 사이에 나라와 국민만 피터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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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12342024-12-08 19:32:47

    팩트 파인더에 모인 분들, 내용도 좋고 글에서 말로 직접 하는 느낌이라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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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quf242024-12-08 18:05:53

    술술 읽히면서도 묵직한 칼럼, 잘 읽었습니다.
    한 글자도 버릴 것 없이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지금의 정국 상황이 정치꾼들의 게임 패가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일부 책임 큰 정치꾼들은 자신들의 포지션에서 한 발짝도 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민주당이 공언한 탄핵 ‘지옥’이 과연 누구에게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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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ryrun2024-12-08 17:53:50

    "2016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우상호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민주당의 성급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국힘을 충분히 설득해 ‘적어도 10표는 확보’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도 없이 탄핵안 발의를 너무 빨리 추진한다는 것이다.".. 2016년 우상호가 그립고, 정치를 사적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남발하는 민주당의 성급함이 정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저또한 궁금합니다. 부디 옳은길로 나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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