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30일 오후, 의정부 가능역 광장. 한 남자가 국자를 들고 서 있다. 땀이 이마에 맺혔다. 마지막 날이다. 경기도지사 김문수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화려한 송별회가 아니었다. 성과 발표회도 아니었다. 그냥 밥을 퍼주는 일이었다. 4년 전 같은 자리에서 급식봉사로 업무를 시작했던 것처럼. 권력이라는 것의 시작과 끝을 모두 '낮은 곳에서 도민을 섬기는'자세를 유지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말재주가 있거나 주류에 속해있어 이를 제대로 전달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누구나 다 칭송할만한 미담으로 회자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 또한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된 이야기다.
삼성전자를 평택에 유치하기 위해 700번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계산기를 꺼냈다. 700번이면 2년 동안 거의 매일 만난 셈이다. 그런데 잠깐. 700번이라는 숫자 뒤에는 얼마나 많은 '아니오'가 숨어 있을까. 한 번의 미팅에서 바로 '예스'가 나왔다면 굳이 700번까지 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수없이 많았을 거절. 그것을 견뎌낸 끝에 마침내 얻어낸 하나의 '예스'. 100조 원 규모의 투자와 수만 개의 일자리로 이어진.
보통 사람 같으면 열 번 거절당하면 포기했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세 번만 거절당해도 자존심 상해서 그만뒀을지 모른다. 무슨 마음으로 다음 699번의 미팅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을까. 그때 그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혹시 오늘은? 하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이미 체념한 채로, 그래도 해야 할 일이니까 하는 마음이었을까. 우스갯소리지만 도지사가 이렇게 문턱이 닳도록 방문했다면 오히려 김문수지사 본인이 아니라 그를 상대했던 삼성직원들이 일종의 PTSD가 오지 않았을까 걱정할만한 수준 아닌가?
부인 설난영 여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복지 사각지대 5천여 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5천 곳. 경기도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건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 31개 시군에서 5000곳이 넘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가 그분들을 만나 인사드리고 현장의 어려움을 남편에게 전달해 환경 개선을 돕는 역할을 했죠."
권력자의 가족이라면 으레 특권을 누리며 편안하게 지낼 법한데, 오히려 더 큰 책임감으로 현장을 뛰어다녔다. 도지사가 직접 가지 못하는 곳들을 챙겼던 것이다.
꼰대같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군대 다녀온 사람은 안다. 높은 계급의 간부가 부대에 온다고 하면 온갖 준비로 난리가 난다. 번거롭고 귀찮다. 하지만 그 간부가 만약 내 얼굴을 기억하고, 형식적으로 여겼던 면담 내용을 언급하며 한마디라도 건넨다면? 그날부터 군대를 바라보는 눈이 180도 바뀐다.
행정도 다르지 않다. 김문수는 어린이집부터 복지단체까지 직접 찾아다녔다. 그리고 기억하고 대화하며 웃음과 눈물을 나눴다. 어찌 보면 사무실에서 편하게 문서나 전화로 혹은 누군가에게 지시로도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충분했을 일을 굳이 발로 뛰면서 말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김문수 지사를 모시던 공무원들도 그걸 바라보는 민원인들도 남다른 심정 아니었을까?
어린이집, 모내기와 추수의 현장, 건설현장, 각종 공장, 시장, 구내 식당, 시설의 화장실 청소부터 지역행사, 스포츠 행사, 경기도 추진사업, 여러 스포츠 유망주 지원 협약. 각종 복지단체 방문 사진들이 온라인에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의 반응은 하나같았다. "도대체 이 사람 정체가 뭐지? 대체 잠은 언제 잔 건가?" 놀라움의 탄성이 댓글로 넘쳐났다.
2011년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23일. 공식 일정도 없었는데 홀로 수원의 '사랑의 집'을 찾았다. 노숙자 등 150명분의 점심을 배식하고 함께 식사했다. 관장이 만류했지만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까지 했다.
어떤 후보는 "SNS도 업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소통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극히 정치적인 색을 띤 140자의 손쉬운 타이핑과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소통하고 귀 기울이는 진정성. 어느 쪽이 더 무거울까. 아니 오히려 비교를 하는 게 무례한 거 아닐까?
김문수의 8년 임기 결과를 보면 그 답이 나온다. GTX 최초 구상, 판교 테크노밸리 확장,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유치, 하이닉스 반도체, 기타등등... 일자리 87만 9천 개 창출로 전국 일자리 증가분의 48%를 경기도가 차지했다. 130개 외국 기업에서 172억 6천만 달러 투자를 받았다.
발품의 결과다.
물론 그도 완벽하지 않았다. 2009년 경기도가 전국최초로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할 때는 갈등도 있었다. 그로 인해 도정 수행 평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김상곤 교육감과 함께 학교를 찾아 급식 봉사를 할 때도 각자의 철학을 견지했다. 김상곤은 "친환경 급식", 김문수는 "무상급식". 서로 다른 생각이었지만 현장에서 함께 일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런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토론회라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쇼케이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눌변에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잠시만 고민해 보자. 결국 우리가 정치인에게, 또 김문수에게서 진짜 바라는 모습이 과연 막힘없이 화려한 말재주인 것인가?. 최소한 내게는 700번의 만남으로 삼성을 설득하고, 5천 곳의 복지시설을 부부가 함께 돌며 소외된 이웃을 챙기는 모습. 임기 마지막 날까지 급식 봉사를 하는 그런 모습에 더 가깝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의 의지 없이는 공허한 구호에 그친다. 화려한 레토릭보다는 묵묵한 행동으로, 편리한 온라인 소통보다는 불편한 현장 방문으로 일해온 사람.
그래서 나는 어쩌면 정치인 김문수보다 인간 김문수에 더 큰 기대를 하게 된다.
진정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700번의 다짐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의 한 번 약속은, 한 번만 말하고 마는 사람의 백 번 약속보다 무겁다.
이 기사에 10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진실된 분을 이제서야 알게되다니
너무 좋은 기사입니다. 진실되게 살아온 정치인과 그 진가를 알아본 언론의 가치.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사람의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같은 칼을 쓰고 어떤 사람은 남을 위한 여리를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이득을 위해 남을 난도질 하네요. 이념이나 소속이 중요한게 아니라는걸 깨달았습니다. 곧은 마음을 가지고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저도 작은 행동부터 실런하겠습니다. 좋은 사람이 사라지는건 막아야겠습니다. 응원합니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걸 알아보는 눈이 진짜죠. 좋은 글 멀리 멀리 져나가길. 문수대통!
파도파도 미담뿐인 김문수. 존경합니다
파파미 김문수 후보. 날마다 놀랍니다. 반면 이재명은 언플로 만든 빈깡통
후보도 칼럼도 넘넘넘 멋지십니다.
인생 마디마디, 글 구구절절, 절창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정치인 김문수보다 인간 김문수에 더 큰 기대를 하게 된다.
진정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700번의 다짐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의 한 번 약속은,
한 번만 말하고 마는 사람의 백 번 약속보다 무겁다.
문수대통
팩트에 근거하여 제 심정을 표현해주는 논리적이고 진솔한 기사 감사합니다.
이런 분이 대통령 돼야 정상적인 국가죠.
너무 좋은 기사입니다. 문수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