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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칼럼] 이재명 대선 지면 MBC와 JTBC 탓
  • 박주현 칼럼리스트
  • 등록 2025-05-24 16:16:01
  • 수정 2025-05-24 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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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성과 진실 사이에서 길을 잃은 기자들
  • 2025년판 '적에게 막대한 타격' 이야기

현대판 대본영발표


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 대본영 발표를 찾아보면 참 흥미롭다. 1944년 사이판에서 일본군 4만명이 거의 전멸했는데도 "황군 용전분투, 적에게 막대한 타격"이라고 썼다. 거짓말이 아니다. 실제로 용전분투했고, 적에게도 피해를 줬다. 다만 자기들이 더 많이 죽었을 뿐이다.


명나라 말기에도 똑같았다. 이자성의 농민군이 베이징 성문 앞까지 왔는데도 궁중에는 "도적떼 소탕 임박"이라는 보고만 올라왔다. 숭정제는 목을 매달기 직전까지 상황을 몰랐다. 신하들이 황제 기분 상하게 할까 봐 좋은 소식만 골라 전했기 때문이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도 마찬가지였다. 신미양요 때 강화도가 점령당하고 외규장각이 불타는 중에도 "양이들이 우리 위엄에 물러갔다"고 믿었다. 관리들이 그렇게 보고했으니까.


충신들의 특기는 선택적 편집이다.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냥 나쁜 부분은 빼고 좋은 부분만 확대한다. 더 무서운 건 그들 스스로도 그게 전부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북송의 휘종은 그림 그리는 데만 빠져 있었다. 금나라 군대가 카이펑을 포위했는데도 "적이 곧 퇴각할 것"이라는 보고만 들었다. 포로로 끌려가면서야 현실을 깨달았다. 너무 늦었다.


한국의 이재명에게는 MBC와 JTBC가 있다. 그들의 유튜브 썸네일을 보고 있자면 민망한 헛웃음을 참기 힘들다. 여론조사에서는 확연히 지지율이 빠지고 있고 김문수 후보와는 한자릿수까지 좁혀졌는데, 썸네일에는 마치 대선토론에서 이재명이 완벽한 반박으로 상대 제압한 듯 느껴지는 문구들이 춤춘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대중들이 토론을 가장 잘했다고 인정하는 이준석 영상은 찾기 어렵다.



요즘말로 '렉카 유튜버' 같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다. 사건 사고를 과장되게 포장해서 관심을 끄는 일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렉카 유튜버들은 자신이 렉카꾼인 걸 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은 렉카 유튜버들과는 다르다고 믿는걸까?.


충신의 역설이 바로 이것이다. 주군을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결국 주군을 파멸로 이끈다. 당태종이 위징의 쓴소리를 좋아한 이유를 모르는 것이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알면서도 편집한다. 자기편에게 유리한 각도로만 자른다. 그러면서 "공정보도"라고 말한다. 기자로서 부끄럽지 않을까 싶지만, 아마 그들은 이것도 일종의 애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현실이다. 대본영이 아무리 승리 소식을 전해도 미군은 오키나와를 점령했고,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충신들의 헌신적인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만약 민주당이 선거에서 진다면, 그건 MBC와 JTBC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속삭여줬으니까. 진짜 충신이라면 "이 부분은 고쳐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어쩌면 그건 방송국이나 기자의 문제가 아니라 이재명이나 민주당의 문제일 수도 있다. 여태껏 그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던 충신들은 죄다 수박으로 몰려 조리돌림과 분리수거 당했으니까. 적어도 민주당 안에서 쓴소리 하는 사람은 그렇게 사라졌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1인 체제의 정당에선 달콤한 거짓말이 쓰디쓴 진실보다 인기가 좋다.


역사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어느 대목을 살고 있는 걸까. 대본영 발표를 믿던 일본 국민의 심정일까, 아니면 그 발표를 쓰던 기자들의 심정일까. 둘 중 어느 쪽이든 유쾌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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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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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25 01:33:53

    요즘 박주현님 칼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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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25 00:25:59

    언론이라기 보다 돈론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지들 나름대로 먹사니즘이라며 자위하겠지만 어용언론의 일말의 직업의식도 없는 파렴치한 작태에 조금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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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24 23:21:41

    정독했습니다 오랜만에 참 마음에 와닿는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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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24 23:05:30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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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24 20:17:42

    이런글을 읽을 눈과 귀가 있을지도 모를정도로 소통의 흐름이 소화불량에 걸린지 오랜 당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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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24 17:43:13

    정확한 통찰이십니다. 역시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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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5-24 17:32:45

    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명문 칼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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