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김경모칼럼] 중도주의 일상과 제7공화국 개헌 제안
  • 김경모
  • 등록 2025-05-20 22:53:58
  • 수정 2025-05-20 23:20:15
기사수정
  • 우리 일상을 보호하고 개선할 수 있는 개헌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서울공예박물관 (사진=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이낙연 전 총리는 4월 22일 채널A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헌은 우리 일상, 민생과 직결되는 문제다. ‘개헌이라는 게 멀리 있는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내 앞의 얘기다’ 이렇게 국민들이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지금까지 개헌 논의에서 주로 다뤄졌던 분권형 권력구조, 중대선거구제, 다당제에 덧붙여, 시민사회가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 현안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제7공화국 헌법이 담아야 할 몇 가지 핵심 방향을 생각해 보자.

– 1987년 이후 보편화된 미디어와 기술 환경을 반영할 것 

– 소위 ‘3P’로 불리는 포퓰리즘, 탈진실, 극단화 현상을 제어할 장치를 마련할 것

– 제2의 이재명을 막기 위한 정치적 안전장치를 마련할 것

– 다가올 사회적 위기와 혼란을 중도적 시각으로 대비할 것

–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의 장점을 헌법적으로 보호할 것

– ‘빨리빨리’ 문화에서 차근차근 단단하게 발전하는 ‘축적’의 문화로 전환할 것

이러한 지향점을 기반으로 열다섯 가지 개헌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자.


1. 소셜미디어 플랫폼 견제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폐해를 낳았다. 우리가 서로 다른 ‘타임라인’ 속에 머무는 동안 공동체의 결속력은 약해졌고, 스크린을 새로고침 할 때마다 집중력은 짧아졌다. 집중력이 짧아지니 대화와 타협의 기본 요건인 맥락과 뉘앙스는 점점 사라졌고,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만 주목받고 있다.

경악스러운 점은 이 현상이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치밀하고 의도적인 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맞서 호주를 포함한 여러 국가는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관련 기사) 제7공화국 헌법에서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기본 윤리, 가치, 지향점을 명시해 놓는 것은 어떨까.

한편,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자료에 의하면, 중국에서만 최소 30만, 최대 2백만 명이 인터넷 여론전에 동원된다고 한다. (관련 링크) 일반 사용자를 기만하고 대중 여론을 선동하는 대규모 봇계정, 가짜뉴스, 바이럴, ‘온라인 내정간섭’ 등을 엄격하게 규제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도 필요하다.


2. 인공지능 기술의 지향점

인공지능 기술은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구글 딥마인드 CEO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앞으로 10년 이내 인공지능이 모든 질병을 박멸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헌법을 바꾸는 것은 힘들고, 인공지능이 가져올 사회 변화는 분명하니, 인공지능 기술 사용에 대한 기본 지향점과 윤리를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어떨까.


3. 오프라인 문화 공간의 보호

온라인 세상은 넓어지고 부동산 가격은 오르니, 오프라인 문화 공간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크고 작은 서점, 극장, 공연장, 영화관, 미술관, 박물관 등은 우리 사회 공동체의 결속을 크게 강화시켜 주지만 비싼 임대료에 부딪혀 개개인의 스마트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오프라인 문화 공간의 가치를 새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어떨까. 일찍이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도 “건물주가 1층 가게를 서점으로 임대하는 경우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자”고 주장했고 (관련 칼럼), 이낙연 전 총리도 전남지사 시절 ‘작은 영화관’ 건립 정책을 펼쳤으니 (관련 링크) 좌우 진영을 떠나 모두가 공감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4. 헌법 내 ‘암묵적 전제’ 방어

문재인 정부 개헌안은 헌법 제9조 ‘전통문화의 계승ᆞ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 범위를 넓혀, ‘문화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증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안의 선의는 의심치 않지만, 현재의 탈진실, 부조리 시대에 매우 취약한 내용이다. 농담 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문화의 자율성과 다양성’이라고만 적어 놓으면 ‘조폭 문화’, ‘마약 문화’, ‘성매매 문화’의 가치도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분명 나올 것이다.

새 헌법에서는 이러한 궤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중요한 개념과 단어의 의미를 미리 헌법에 규정해 놓아 이들의 ‘암묵적 전제’를 공고히 방어할 필요가 있다.


5. 여성과 성별의 명확한 법적 정의

얼마 전 영국 대법원은 ‘여성(woman)’이란 단어의 법적 정의(definition)는 ‘생물학적인 여성(female)으로 태어난 사람들’이라고 판결했다. (관련 기사) 영국 최고 법관들이 ‘여성’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논의하고 있는 것조차 조지 오웰 소설 속 한 장면 같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현재 독일과 스페인 남자는 자기 선언(self-ID)만으로 법적 여성이 될 수 있다. (관련 기사, 관련 보도자료)

우리는 이런 서유럽의 소모적, 퇴행적 혼란을 겪지 말고, 새 헌법에 여성의 법적 정의를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밝혀두어, 청소년, LGB 성소수자, 여자 스포츠, 여성 전용 공간, 여성 정책의 근거 등을 보호 및 방어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가능하다면, ‘젠더(gender)’의 법적 정의(definition)는 무엇이고 ‘성별(sex)’의 의미와 어떻게 다른지도 구분해 놓을 필요가 있다.


6. 주민등록번호 체계의 보호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의료진, 공무원, 정부의 헌신 덕분이었지만, 그들의 노력을 뒷받침한 핵심 행정 인프라 중 하나인 주민등록번호 체계 역시 조용히 큰 역할을 해내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범용 주민등록번호 체계는 마치 공기처럼 일상에 녹아 있어, 필수적인 제도라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어렵다. 놀랍게도 영국, 캐나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독일과 같은 많은 국가에는 우리와 같은 범용 주민등록번호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가 2002년부터 범용 주민등록번호 체계(National ID) 도입을 주장했지만, 지금까지 제도화에 실패했다.

주민등록번호 체계는 우리가 정부로부터 공공 서비스를 받기 위한 필수적 인터페이스(interface)로서, 팬데믹과 같은 특수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신속하고 체계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핵심 도구이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펼쳐질 비정상의 시대에 누군가 그럴듯한 명분을 들어 이 체계를 공격할 가능성도 크다. 이를 사전에 방어하기 위해 주민등록번호 체계의 가치와 지향점을 새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어떨까.


7. 의료 민영화 견제

최근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넓고 길게 보면 대한민국 의료제도는 공공성과 시장 효율성을 조화롭게 결합한 최고의 중도주의적 성취이다. 미국처럼 의료비가 천문학적으로 높지도 않고, 영국처럼 의료 시스템의 재정적 부담으로 서비스 질이 저하되지도 않았다.

문재인 정부 개헌안은 건강권을 신설하여 건강에 관한 권리 보장을 높이고, 국가에 질병 예방과 보건의료 제도 개선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부여했다.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공공 의료제도를 근간으로 한다고 새 헌법에 명시하여 앞으로 다가올 의료 민영화의 다국적 위협에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 




8. 정당 내 엔트리즘(Entryism, 위장 잠입 침투전술) 방지

이재명과 윤석열은 본질적으로 양대 정당을 ‘하이재킹’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을 존경하고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윤석열은 국민의힘 소속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과거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했고 반노·반문 활동을 했던 이재명은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재명은 민주당을 ‘좋은 그릇’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으며, 한미동맹에 기반한 외교·안보를 당 강령에 천명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일선 지역 단톡방에서는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 영상, 관련 기사)

이재명 세력과 같이 소수의 외부 세력이 의도를 숨기고 큰 조직에 잠입해 해당 조직의 정체성과 운영 방향을 크게 바꾸는 것을 트로츠키식 ‘엔트리즘(Entryism, 위장 잠입 침투전술)’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 한국의 1970년대 노동운동가들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기업에 위장 취업한 사례도 비슷한 맥락이며 (관련 웹페이지), 현대 정당사에서는 영국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엔트리즘으로 비판받다 노동당에서 축출당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치적 정체성이 전혀 다른 소수의 외부 세력이 주요 정당에 침투해 정당의 성격과 정책 방향을 급격히 바꾸는 것은 국가의 정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크게 해친다. 이를 헌법적 차원에서 방지하기 위해, 정당의 당내 선거나 공천 절차에 참여하려면 (예를 들어) 최소 5년 이상 당원 자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조항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이재명과 같은 ‘정치 하이재커’가 외부 세력을 대거 동원해 당을 급격히 장악하는 시도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9. 경선 규칙의 예측 가능성 강화

정당이 매번 선거 직전 자의적으로 당내 경선 규칙을 변경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정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크게 훼손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경선 규칙은 (예를 들어) 최소 2~3년 전에 미리 확정하도록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했을 때, 최소한 공천관리위원회 사무실 앞에 드러눕는 정치인은 덜 보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10. 전략공천 범위 축소

멀쩡해 보였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이재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어려워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재명이 쥐고 있던 공천권 때문이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당대표가 전략공천권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데 있다. (물론 공천관리위원회라는 것이 형식적으로 존재하긴 한다.) 현재 민주당의 경우, 당대표가 전체 선거구 수의 20%까지 전략공천 할 수 있다. 비명계 입장에서는 본인 지역구가 전략공천 지역이 되는 것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침묵의 나선’ 효과를 개선하기 위해, 헌법 차원에서 정당 내 전략공천 비율을 최소 수준 (예를 들어 전체 선거구 수의 5%)으로 제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되었을 때 당내 비판 세력이 최소한의 유의미한 규모를 더 쉽게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훗날 ‘제2의 이재명’이 공천 신청하는 시나리오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므로 전략공천 제도는 존치해야 한다.)




11. 선거관리위원회의 투명성 강화

현재와 같이 선거관리위원회가 의심받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의심받고 있다는 심각한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여야가 선관위를 보다 더 면밀하고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민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선거관리를 위해, 선거관리 방법론으로 ‘최소 공통분모’(공통된 최소 수준의 합의점)의 원칙을 천명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12. 공수처와 검찰청의 상호 견제 구도

그간 공수처가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해도,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로서 본래의 설립 취지까지 폄훼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법조 엘리트 간의 묘한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현상에서 힌트를 얻어, 사법고시를 제한적으로 부활시킨 후, 공수처 검사들은 사법고시 출신으로만 구성하는 것은 어떨까. 사시 출신 공수처 검사와 로스쿨 출신 검찰청 검사 간의 진심 어린 경쟁과 견제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13. 중도적인 이민 정책 지향점

대한민국의 인구 감소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적 과제인 만큼, 지금보다 더 많은 이민자를 수용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서구 여러 국가에서 보듯, 제한 없는 이민자 포용 정책은 역설적으로 극우 정당의 부상을 초래할 수 있고, 반대로 이민자들을 일률적으로 배척하면 사회의 역동성과 노동력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

이러한 양극단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중도주의적 이민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헌법 차원에서 뒷받침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정체성 유지와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중도주의적 이민 정책의 기본 원칙을 새 헌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14. 주택 독과점 방지

2022년 일명 ‘빌라왕’으로 불린 인물이 보증금 사기를 벌인 사건에서, 그가 무려 1,139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다른 사기범인 ‘빌라의 신’은 3,493채에 달하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 자산 규모 세계 4위였던 빌 게이츠가 보유하고 있던 주택은 고작 열 채 정도였다. 이 간극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쯤에서 우리는 ‘주택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주택은 자산 증식의 수단인가, 아니면 개개인의 일상의 기반인가? 부동산에 들어가는 돈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어떠한 이익을 가져오는가?

문재인 정부 개헌안에선 ‘주거권’을 신설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도록 하고 있다. 주택을 둘러싼 빈부격차와 ‘불안의 격차’는 포퓰리즘 정치가 빠르게 증식하는 토양인 만큼, 새 헌법은 주거권 신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일정 개수를 넘는 다주택 소유를 제한하는 근거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5. 핵심 공공 직군의 처우 보장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시장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운영해야 할 핵심 공공 직군이 있다. 예컨대 소방관, 일선 경찰, 직업 군인, 초·중·고 교사 등은 사회의 안전과 지속 가능성을 지탱하는 필수 인력이다.

새 헌법에는 이들의 처우를 대기업 종사자의 평균 급여 수준에 일정 비율로 연동하는 세부 제도의 헌법적 근거를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임금 보장을 넘어, 국가가 공동체의 안전과 교육, 법질서 유지라는 공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헌법적 약속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민간 기업으로만 몰리지 않고 이러한 핵심 공공 직군으로도 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공공 부문의 전문성과 역량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13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21 04:45:03

    뜨겁고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지만 제시한 모든 내용이 반영되는 그런 멋진 헌법 기대합니다. 낡고 고루한 헌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이재명같은 인간이 절대 정치하지 못하는 그런 법개정 간절히 소망합니다. 국민이 너무 피곤해요.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21 04:34:25

    화이팅 김문수~

  • 프로필이미지
    alsquf242025-05-21 00:29:16

    저도 북마크 합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5-20 23:24:46

    북마크 해서 꼼꼼히 읽어봐야겠어요 엄청난 식견에 감탄하고 갑니다

아페리레
웰컴퓨터
아페리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