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의 변신왕: 이재명과 토론의 아이러니한 관계
토론장의 마이크는 비어 있었다. 이재명 후보의 자리만.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하는 TV 합동 토론회에서 그가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정이 13일에서 15일로 바뀌었다는 것. 사흘의 차이가 그에게는 넘을 수 없는 강이었다. 다른 후보들은 일정을 조정해 참석할 의사를 밝혔지만, 이재명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공포영화에서 주인공이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할 방에 들어가지 않기로 한 유일한 캐릭터처럼.
인간의 기억은 선택적이다. 나는 2017년 봄의 이재명을 기억한다. 그는 토론에 갈증을 느끼는 사막의 여행자 같았다. "후보 토론의 장을 최대한 보장하지 않는다면 경선 협의 불참을 검토하겠다"는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있었다. 당시 문재인 전 대표가 토론회에 불참하자 이재명은 격분했다. "민주정당에서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후보가 국민 검증을 위한 토론회를 계속 회피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이해 부족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역행입니다." 그의 말이 녹음기처럼 반복해서 귓가에 맴돈다. 그는 심지어 "지상파 끝장 무제한 토론"을 제안했다. 마치 술집 마지막 손님이 되어 바텐더가 눈치를 줄 때까지 잔을 비우자고 제안하는 열정적인 음주가처럼.
시간이 물처럼 흘렀다. 정치인의 원칙은 종종 계절처럼 변한다. 봄의 원칙이 여름에는 사라지고, 가을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이재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때는 인천경기기자협회 토론회에 불참했다. 이유는 '편향된 질문'이었다. 마치 인터뷰 전에 기자에게 "이 질문만 빼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배우처럼. 2024년 3월에는 한동훈 위원장과의 1대1 TV토론을 거부했다. 대통령과의 대화가 먼저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마치 헤어진 연인에게 "지금은 새 사람을 만나야 해서"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한동훈 위원장은 그의 불참을 "토론에서 거짓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도망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누구의 해석이 맞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자.
지난 대선 경선 때부터 이재명 측의 주장으로 민주당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경선룰을 시행한다. 연설을 듣고 투표하는 게 아니고 투표를 하고 연설을 듣는 방식이다. 경선장에 가서 후보의 연설로 마음이 바뀌는 걸 방지하려는 듯한 희한한 방식이 아닐 수없다.
나는 이재명의 토론 참여 패턴에서 수학적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것은 놀랍도록 단순한 방정식이었다. 토론 참여 열의 = k / 지지율. k는 상수다. 지지율이 바닥일 때 그는 토론을 갈구하고, 지지율이 치솟을 때 그는 토론을 회피한다. 마치 배고플 때만 연락하는 구애자와 같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이를 '침대 축구'라고 표현했다. 앞서 나가는 팀이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드러눕는 전략. 이준석은 "토론을 회피하고 두려워하는 전략, 이준석에게나 먹히지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먹히겠느냐"고 날을 세웠다. 정치인들은 서로를 비판할 때만큼은 창의적인 표현력을 발휘한다.
관훈클럽 토론회는 또 다른 미스터리다. 한덕수 무소속 후보는 6일,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8일로 일정이 확정됐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의 일정은 미확정 상태로 공중에 떠 있다. 그는 최근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관련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선고받았다. 중견 언론인들의 날카로운 질문은 때때로 수술용 메스처럼 아픈 부위를 정확히 찌른다. 한 민주당 인사는 "사법 리스크에 각종 논란에 토론 해봐야 본인이 밑진다고 생각하니 그러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정치판에서 가장 정확한 분석은 종종 같은 당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악당이 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한때 '토론의 달인'으로 불리던 이재명은 이제 '회피의 달인'이란 새 타이틀을 얻었다. 그의 변신은 카프카의 소설처럼 극적이다.
2021년 말, 윤석열 후보가 토론을 회피할 때 이재명은 "토론이 그렇게 무섭나. 국민께 보여드릴 내용이 그렇게 없나"라고 비판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질문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그에게 돌아왔다. 인생은 때로 원형의 서사를 그린다.
세부 사항에는 항상 악마가 숨어 있다.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이 대선 이후로 연기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인 이 후보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그에게 관대했다. 토론회 주최 측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는 토론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치적 부담이 큰 재판은 연기하고, 정치적 부담이 큰 토론회도 회피하는 모습. 자칫 짜쳐보이는 일관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저 인간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편안한 길을 선택하고 싶어 하니까.
수권 정당이 되려 하고, 지지율이 가장 높은 후보일수록 국민에게 정책을 알리고 검증받아야 하지 않을까. 토론을 피하는 권력자가 민주사회에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토론은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이재명 후보가 다시 한번 "토론의 달인"으로 귀환할 수 있을지, 아니면 끝내 "회피의 달인"으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6월 3일 대선을 앞둔 지금, 우리는 더 많은,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통해 후보자들을 검증할 기회를 원한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정치인의 변화는 종종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이재명의 토론과의 관계 변화는 우리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 변화를 지켜보며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토론을 잘하는 토론왕 이재명이라는 유니콘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듯하다.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무식함과 천박함이 드러날까봐~~
거짓말이 밝혀질까봐~
토론도 못하는 대통령 후보!!!
"이재명 후보가 다시 한번 "토론의 달인"으로 귀환할 수 있을지, 아니면 끝내 "회피의 달인"으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6월 3일 대선을 앞둔 지금, 우리는 더 많은,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통해 후보자들을 검증할 기회를 원한다."
이제명은 토론회에 임하는 행태 뿐만이 아니라 언제나 구차하다.
개인적으로 이제명이 토론을 잘 한다거나 말을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좋은 기사 잘 보고 갑니다. 촌철살인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