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은 공수처가 벌이고 수습은 검찰이 해야 하는 상황?
어떤 축구팀에 감독이 부임 했다고 하자. 그런데 이 감독에게 독특한 조건이 요구된다. 이전 감독이 구성해 놓은 선수로 시합을 이기라는 것이다. 선수 구성과 포지션, 전략도 모두 이미 떠난 감독의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럼에도 시합에서 지면 그 책임은 이 감독이 져야 한다.
이런 무능한 팀을 이끌고 승리를 하라고? 갑갑해진 검찰. 마침 심판(법원)이 전반전 종료(윤석열 영장 연장 기각)를 선언해 한 숨 돌리긴 했지만... (그래픽=가피우스)
공수처가 검찰에게 기소의뢰를 하고 수사기록을 넘겼다. 경험한 적이 없는 독특한 광경이다.
독점하던 수사권을 경찰과 분담한 이후에도 검찰은 보완수사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수사지휘를 해왔다. 경찰의 수사상황을 검찰이 관찰할 수 있는 구조다.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 하더라도 검찰이 다시 수사해 불기소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공소유지란 단순히 기소하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과 변호인의 변론에 대해 일일이 반응하고 반박하며 유죄판결을 받아야 하는 고단한 과정이다. 따라서 공소유지의 책임이 있는 검찰로서는 경찰의 의견에 구애받지 않고 공소유지 가능성에 집중해 보완수사나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사건은 이미 검찰이 그 수사기록에 관여하고 기소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르익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번 공수처의 수사에 검찰은 관여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거나 보완수사 요청도 받지 않았다. 체포와 구속영장도 검찰을 경유하지 않고 직접 법원을 선택하고 청구했다. 수사의 전 과정을 독립적으로 진행하여 수사기록을 편제했다. 그리고 검찰에게 기소해 달라고 넘겼다. 구조상 검찰은 공수처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결과물을 가지고 공소유지를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경찰과 달리 공수처는 검찰의 입장에서 이질적 기관이다. 그래서 이 상황이 마냥 자연스럽게 보이지는 않는다.
공수처의 수사능력과 자원이 검찰에 비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공수처가 무려 대통령에 대해 강제수사를 하여 기소의뢰를 하였다. 수사권과 관할권의 부담도 감수하면서 말이다. 검찰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마치 이전 축구감독이 구성해 놓은 선수와 작전으로 시합에 나가야 하는 것과 비유될 수 있다.
법원마저 영장연장을 기각, 차라리 다행일까
검찰이 공수처의 수사내용을 가지고 기소를 할 경우 윤석열측의 공격에 대해 일일이 대응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공수처 수사에 대해 제기 되었던 수사권, 수사관할의 문제에 대해 검찰이 방어해야 한다. 내란죄 성립을 지켜내지 못하면 소추권 없는 대통령을 기소한 역풍을 검찰이 떠안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통치행위’ 쟁점에 대한 공방으로 공소유지의 피로감은 높아질 것이다. 일은 공수처가 저질러 놓고 검찰이 뒷정리를 해야 하는 형국이다. 보완수사나 공소장 작성, 기록정리를 위한 시간도 필요하다. 공수처가 구속기간을 소진한 상태에서 검찰은 법원에 구속기간 연장(10일) 신청을 해야만 한다. 대개 법원이 이를 허용하기는 하지만 만약 법원이 연장해 주지 않을 경우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 보완수사나 기록정리도 제대로 못하고 기소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김성훈 변호사가 본지에 해당 원고를 기고한 시점에서는 서울중앙법원이 영장연장을 기각하기 전이었음. 편집자 주)
구속기간의 혼란, 공수처와 검찰의 조율이 없었다는 방증
구속기간 연장신청을 어디에 해야 하는지도 문제다. 서울중앙지검이 서부지법에 구속기간 연장신청을 하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다. 남의 관할에 구속연장을 요청하는 결과가 된다. 서울중앙지법에 기소를 해야 하고, 그 관할인 서울구치소에 피고인이 수감되어 있는 상태에서, 정작 구속영장은 서부지법이 발부한 이례적 상황도 검찰이 정리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검찰과 공수처가 조율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랬다면 공수처는 영장청구부터 검찰에 의뢰하여 정리했을 것이다. 노골적으로 표출하지 못할 뿐 검찰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 있는 상황이다.
구속기간 만료일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체포로 인해 구속기간의 일부가 소진된 부분과, 체포적부심으로 중단된 시간에 대한 공수처와 검찰의 입장차이로 구속기한이 언제인지도 정리되지 않았다. 만약 연장될 경우 구속 만료일이 2월 4일에서 6일 사이라는 불확정한 날짜가 보도된다. 아니, 사람의 인신에 직결되는 구속날짜가 특정되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검찰이 울며라도 먹어야 하는 겨자
그렇다고 검찰이 경찰의 송치에 대해 했던 것처럼 수사가 미진하다는 등의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할 수도 없다. 그 역풍은 공수처가 아닌 검찰에게 오기 때문이다. 보완수사를 명할 근거도 없다. 결국 검찰은 공수처가 만든 수사기록과, 공수처가 남긴 각종 과제들(수사권, 관할권 등)을 불확실하면서도 촉박한 구속기간과 함께 떠안았다. 이를 급히 해소할 방법은 윤석열의 자백이 유일해 보인다. 구치소로 찾아가 어떻게든 자백을 유도해 보려는 시도를 해볼지 모르겠다. 그러나 공수처가 영장체포와 구속후 서신차단, 접견제한, 강제구인을 시도해도 자백을 받는데 실패한 상태다. 일의 순서가 매끄럽지 못했다. 그 부담도 검찰이 지게 되었다. 시간은 없고 해소해야 할 문제는 많다.
자기가 구성하지도 않은 선수단으로 당장 시합에 나가야 하는 감독의 심정과, 막상 시작 되었을 때 벌어질 경기의 양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매우 흥미진진한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