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규모는 대략 우리의 2.15 배다. 그들이 5,500억 달러를 낸 것을 우리 체급에 맞춰 단순 환산하면 약 2,000억에서 2500억 달러면 충분할 것이다. 유럽연합 30개국이 7,000억 달러를 약속했으니, 국가당 평균은 233억 달러, 어쩌면 그 이하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몇 배에 달하는 4,000억 달러라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제시했음에도 협상이 난항이란다. 이는 정상적인 경제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답은 하나뿐이다. 우리는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혔다. 협상 테이블의 변수는 금액이 아니라, '셰셰'로 상징되는 반미-친중 행보에 대한 '괘씸죄 페널티'말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 페널티는, 우리가 아무리 막대한 돈을 밀어 올려도 결코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2024년 11월 필리핀이 두테르테 시대의 친중 노선을 버리고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며 안보와 경제에서 새로운 이점을 확보하는 현실을 보라. 우리는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이 진실의 전부다. 더 이상의 분석은 사치다. 우리는 지금 외교 무대에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신뢰’를 파산했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친구를 배신하고 적에게 아양을 떤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동정이 아니라, 가장 비싼 값의 청구서일 뿐이다. 마치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처럼, 한번 흩어진 신뢰는 재결합하기까지 막대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그 과정에서 국가적 자산은 속절없이 소멸하는 것이다.
그 4,000억 달러는 또 어떤 돈인가. 얼마 전까지 '해체'하라며 악마 취급하던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짜낸 돈이다. 이런 돈으로 국가의 자존심을 사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 정권의 천박한 반기업 철학을 증명한다. 그 밉다던 재벌총수들을 관세협상에 앞세우고 그들이 귀국하면 기다리고 있는 건 '노랑봉투법'과 '법인세 인상'이다. 강성노조와 이런 정신병 걸린 듯한 정부의 등쌀을 견뎌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대접을 하다가도 또 기업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마치 오렌지 쥐어짜듯 한껏 짜내고는 왜 더 이상 즙이 나오지 않느냐며 탓을 하겠지?. 참으로 유능하다. 유능해. 이런 행태는 기업들의 사기를 꺾고 장기적인 경제 활력을 저해하는 '구축 효과'를 야기할 뿐이다.
그래픽 : 박주현
이런 상황에서, 이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국가적 기념일인 80주년 광복절에 취임 두 달 넘은 자신의 '임명식'을 하겠단다. 불타는 로마를 보며 하프를 켜던 네로의 광기마저 차라리 낭만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거대한 '태권V' 로봇을 불러내 쇼를 벌이면, 이 모든 굴욕과 파산의 현실이 가려질 것이라 믿는가. 이는 카프카의 『성』에 나오는 주인공 K처럼, 눈앞의 현실을 외면한 채 본질 없는 허상에 매달리는 행태와 다를 바 없다.
나라면,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쯤 되면 부끄러워서라도 입을 다물겠다. 만일 그를 향해 '유능하다'는 말을 뱉기라도 했다면, 저 태권V의 거대한 그림자 뒤에 숨어 내 입을 때리며, 국민에게 석고대죄라도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뻔뻔함이 유능함을 대체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우리와 우리의 미래 세대가 치르게 될 것이다. 더 두려운 얘기는 어떤 청구서가 더 날아올지 모르는 방위비 협상이 저 멀리서 손짓하고 있다는 게다. 이 모든 것은 맹목적 반미주의가 낳은 비극적 자화상이다.
이 기사에 9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언제나 공감가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네요! ㅠㅠ 15% 지켰다고 자화자찬하는 꼬라지에 아침부터 열이ㅠㅠ
이런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친중의 댓가도 댓가지만 정밀지도 등 비관세 장벽을 내주지 않은 대가도 분명히 있습니다. 네이버와의 커넥션 의혹이 점점 합리적 의심 수준으로 다가우는 것 같습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국민임명식 이딴 건 그만 둬야. 허리띠 졸라매야하는 상황인데. ㅠ
4천억 달러,. 이럴 줄 알고 김민석이 제2의 IMF 위기다, 금 모으기 운운한 건가 ㅠㅠ 나라 허리 휘겠어요.
흥미러운 분석에 감사합니다. 공감 !
독선적인데다 무능한 리더가 나라를 얼마나 망칠 수 있는지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