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아마 팩트파인더 웹사이트를 클릭하다 갑자기 마주치는 생소한 버튼이 하나 생긴 걸 알아챘을 것이다. '원고료납부하기'.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어? 이거 뭐지? 혹시 사기?" 마치 평생 공짜로 마셔왔던 동네 약수터에 갑자기 동전 투입구가 생긴 느낌이다.
이 버튼을 처음 기획한 사람의 심정을 상상해보자. 아마 회의실에서 "음... 독자들한테 돈 좀 받아볼까요?"라고 말하며 온몸이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돈 달라'고 하는 건 거의 죄악에 가깝다. 우리는 친구와 밥을 먹어도 "내가 낼게, 아니야 내가 낼게" 하며 계산대 앞에서 씨름하는 민족이다.
그런데 이 어색한 버튼이 사실은 가디언이나 뉴욕타임스가 이미 성공시킨 모델이다. 다만 그들은 좀 더 세련되게 포장했을 뿐이다. "Support independent journalism"이라고 쓰면 폼이 나고, "원고료납부하기"라고 쓰면 세무서 냄새가 난다. 네이밍의 힘이란.
생각해보면 우리의 돈 감각은 정말 기묘하다. 넷플릭스에 월 17,000원을 내는 건 당연하다고 여긴다. 웹툰 한 편에 300원을 지불하는 것도 전혀 아깝지 않다. 심지어 카카오톡 이모티콘에 2,500원을 쓰면서도 "귀여워서 샀어"라며 뿌듯해한다.
그런데 신문 칼럼에는 절대 돈을 내지 않는다. 마치 신문 기자들이 공기를 먹고 사는 광합성 생물체인 양 생각한다. 아니면 정부에서 월급을 주는 공무원 정도로 여긴다.
이 모순을 보면 우리가 '정보'와 '오락'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 수 있다. 웃음이나 재미는 돈을 낼 만한 가치가 있지만, 사실이나 분석은 공짜여야 한다는 무의식적 편견. 마치 병원 가서 의사한테 "선생님, 진료비는 못 드리지만 농담 하나 해주시면 5만원 드릴게요"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해외 언론들은 이미 답을 찾았다. 가디언은 100만 명이 넘는 후원자가 있고, 이들의 후원금이 광고 수익을 넘어섰다. 뉴욕타임스는 작년에만 750만 달러를 독자들로부터 모금했다. 이들의 전략은 간단했다. 구걸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를 투자자로 대한다. "당신이 우리 회사의 주주가 되어주세요"라는 느낌으로 접근한다. 실제로 많은 독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매체의 '주주'가 된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의 한겨레나 시사인도 비슷한 실험을 하고 있다. 한겨레의 '서포터즈 벗', 시사인의 후원 시스템. 이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독자들이 단순히 돈을 내는 게 아니라 '내가 이 매체를 키웠다'는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원고료납부하기' 버튼을 누르는 건 사실 투표와 비슷하다. 다만 투표용지 대신 신용카드를 사용할 뿐이다. 당신이 3천원을 내면 "이런 글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에 한 표를 던지는 것이고, 1만원을 내면 "이 기자 정말 괜찮다"에 한 표를 던지는 것이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다. 삼천원이든 만원이든, 중요한 건 '이 글이 내 시간을 받을 만했다'는 당신의 판단이다. 마치 길거리 버스킹을 보고 모자에 동전을 던지는 것처럼, 글을 읽고 지갑을 여는 것이다.
물론 강요는 아니다. 글은 여전히 공짜로 읽을 수 있다. 다만 원고료는 일종의 박수갈채다. 콘서트에서 앙코르를 외치는 것처럼, "다음 글도 기대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사람들은 기부할 때 '나에게 돌아올 이익'을 생각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고료를 내는 독자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을까?
우선 양질의 콘텐츠가 계속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광고주 눈치 안 보는 독립적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한국 언론의 다양성을 지켰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이익은 따로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기자의 글을 더 오래, 더 자주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단골 카페에 자주 가서 그 카페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다. 내가 아끼는 곳을 내 손으로 지키는 것, 이보다 확실한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기자 한 명이 칼럼 하나를 쓰기까지의 과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독자가 3분 만에 읽는 글을 위해 기자는 3시간, 때로는 3일을 투자한다고 한다.
정치 분석 기사 하나를 위해 분석하고 연구한다. 과거 기사들을 뒤져보고, 밤늦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틀릴까봐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더 나은 표현을 찾아 문장을 수십 번 고친다. 한 명의 기자가 원고지 한 장을 채우기 위해서는 수십 장의 취재 노트가 필요하다. 칼럼 하나 뒤에는 수백 개의 아이디어가 폐기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나온 글이 독자 앞에 도착한다.
그 시간과 노력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면, '원고료납부하기' 버튼은 그저 감사 인사를 전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커피 한 잔 값으로 기자의 하루를 응원하는 것.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은 거래다.
사실 이런 후원 시스템은 특히 나 같은 외부 기고가들을 위해서도 생겼다고 한다. 매체에서 일하지 않는 필진들에게 소소한 원고료라도 지급하기 위해서. 그동안 많은 외부 기고가들이 순수한 애정만으로 글을 써온 입장에서 그 따뜻한 배려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작은 혁명의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광고주가 아닌 독자가 콘텐츠의 방향을 결정하는 세상. 클릭 수가 아닌 진짜 가치로 글의 성공을 측정하는 시대.
투표로 정치인을 선택하듯, 원고료로 언론인을 선택하는 민주주의. 당신의 한 번의 클릭이 어떤 목소리를 키우고 어떤 관점을 지지할지 결정한다.
공짜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진짜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 버튼 하나로 시작되는, 글의 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 생각해보니 제법 낭만적이지 않은가. 혁명치고는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워서, 아무도 혁명인 줄 모르는 혁명 말이다.
사실 나도 첫 칼럼을 쓰게 된 팩트파인더에 애정이 많다. 그래서 팩트파인더가 더욱 탄탄하게 유지되고 발전되어 정말 좋은 기사와 칼럼을 양산하는 독립언론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그렇기에 언뜻 껄끄러울 수 있는 "돈"에 대해 얘기하는 희생(?)쯤은 얼마든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진짜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글을 적어봤다.
어떤 글이 당신에게 커피 한 잔만큼의 가치라도 주었다면, 그 가치를 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이 기사에 9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저도 기분 좋게 설득되었습니다. 응원합니다.
저도 의도적으로 잘못 눌러 3만 납부했습니다.
근데 기분이 좋아요.
해외 페이팔도 연결 좀 해주세요.
넵!
감사합니다
몰랐었는데 알려주셔서 방금 납부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ㅋㅋ전에 원고료 납부 버튼 눌렀을때 에러 메세지 뜬적 있었어요. 그다음 부터 안눌렀는데 지금보니 되네요~
늘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
같이 가요
네 즐거운 마음으로 원고료 납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음... 나같은 사람은 이름 전번 계좌번호 넣으면 바로 결제되면 좋겠던데,
아까 하다가 말았어요,
컴을 자주 하면서도 늘 뭔가에 부딪치고 의지대로 하지 못하는 컴맹,
나도 내가 답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