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때로 블랙 코미디를 선호한다. 2025년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식을 미디어로 보며 가장 묘한 표정을 지었을 사람은 아마 취임식에 초청받지 못한 주한미국 대사와 주한미군 사령관이었을 것이다. 1985년 서울 미문화원을 점거한 김민석이 총리로, 김일성 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이종석이 국정원장으로, 1989년 주한미대사관을 습격한 정청래가 유력한 당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광경. 워싱턴의 누군가는 분명 이 순간을 '적들의 행진'이라 메모했을 것이다.
셰셰의 함정
"중국에 셰셰(謝謝), 대만에도 셰셰" - 한국 외교의 새로운 공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재명의 외교관은 동아시아의 가장 복잡한 지정학적 모순을 '한 마디'로 해결하려 했다. 일본 대사에게는 "감사하무니다"라고 했다는 변명이 오히려 이 발언의 즉흥성을 증명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웃었을지 몰라도 대다수 양식 있는 외교관들은 아마 그 자리에 굳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측근들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로라 루머는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접수했다"며 SNS를 도배했고, 스티브 배넌은 워룸 방송에서 "중국산 투표기기 조작"을 주장했다. 그들의 레토릭은 2020년 미국 선거 부정 주장과 똑같은 패턴이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내러티브였다.
800만 달러의 진실
6월 5일 대법원의 판결문은 차가웠다. 이화영 전 경기평화부지사에게 징역 7년 8개월. 800만 달러 중 300만 달러가 이재명의 2019년 방북 비용이라는 사실이 법정에서 확인됐다. 재판부는 "이화영의 범행은 이재명 지사의 방북 추진과 직접 연관"이라고 못을 박았다. 쌍방울그룹으로부터 3억 3천만 원을 받은 뇌물 혐의까지 겹치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정치자금 문제를 넘어 UN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으로 확장됐다.
판결문에 '이재명'이 104회 등장했다는 사실은 통계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제 그 104번의 언급은 CIA 보고서의 각주가 될 것이다.
배넌의 전쟁
트럼프 측근들의 반응은 예상 가능했다. 고든 창은 "이재명 정권은 베네수엘라 시나리오를 재현 중"이라고 경고했고, 배넌은 "중국이 한국의 새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지원했고 미국은 엿을 먹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한국은 이미 '잃어버린 동맹'이다. 백악관의 공식 입장은 "공정한 선거"를 인정하면서도 중국 간섭 우려를 강조하는 이중 메시지였다. 외교적 수사법의 교과서다.
국내에서라면 유시민과 김어준이 나서서 "신경전"이니 "기싸움"을 외치며 박수와 웃음으로 무마시키려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에서 저런 위인들에게 관심이 있을 턱이 있나?. 워싱턴에는 다른 종류의 논리가 작동한다. CIA는 북한 송금 계좌를 추적하고, FBI는 이화영과 쌍방울그룹의 금융거래를 분석 중일 것이다. 미국이 주도한 대북제재 위반 혐의자가 대통령이 된 상황에서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침묵의 외교
미국의 대답은 침묵으로 왔다. 이재명의 당선 축하 메시지는 건너뛰었고, 동맹국 대통령에게 관례적으로 걸려오는 축하 전화도 없었다. 대신 트럼프는 보란듯이 시진핑, 푸틴과의 정상 통화를 연달아 발표했다. "시차 때문에 통화를 못 했다"는 청와대의 해명이 오히려 이 상황의 비극성을 강조했다. 동맹국 대통령이 시차 핑계를 대야 하는 외교적 굴욕.
아이러니는 여기서 절정에 달한다. 어찌 보면 이재명은 일단 대통령이 되면 트럼프를 만나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재명의 당선과 내각 인선 자체가 미국으로선 도발로 느껴질 만한데 이재명 본인은 그것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상황을 컨트롤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안 남은 건, 그저 당을 장악하기 위해 소위 말해 위협이 될만한 능력 있고 지성이 있던 자들의 '수박'을 깼을 뿐이고, 국내 정치에서 자신의 입과 손이 되어준 김민석을 중용했을 뿐이고, 정청래가 또한 가신의 역할 충실히 했으니 뭐가 문제인지 몰라 답답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능력을 넘어선 자리를 탐한 왕관의 무게인 것을.
역사의 교훈은 명확하다. 권력은 기억하지만, 정보기관은 기록한다. 그리고 기록은 언젠가 청구서가 된다. 지금 그 청구서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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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소2025-06-07 16:42수정 삭제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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