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년 영국의 한 들판. 존 왕은 귀족들에게 둘러싸여 떨리는 손으로 양피지에 서명했다. '대헌장(Magna Carta)'이었다. 그 핵심은 단순했다. "왕이라도 법 위에 설 수 없다."
800년이 흐른 2025년 5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법사위 회의실에서는 정반대의 법안이 통과되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면 법 위에 설 수 있다."
투명 망토를 입은 피고인
서울고등법원은 이재명 대선 후보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6월 18일로 연기했다. 재판정에 서야 할 피고인이 대통령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더 놀라운 일은 그 후 벌어졌다. 국회 법사위에서 '대통령 당선되면 재판 중단'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안건 상정에 반발해 표결에 불참하는 동안, 민주당 주도로 법안은 의결됐다.
해리 포터의 투명 망토처럼, 이 법안은 피고인을 법정에서 사라지게 한다. 단,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하고, 효력은 5년간만 유지된다. 법무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대통령직이 범죄의 도피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누군가를 위해 통금 구역에 특별 통행증을 만들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다.
민주주의의 면역 체계가 무너지는 소리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은 단순한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방지하는 면역 체계다. 면역 체계가 약해지면, 민주주의라는 몸체는 병에 취약해진다.
2023년 9월,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는 민주정치의 근본인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비판의 화살이 1년 반 만에 방향을 바꾸어 날아왔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정권이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재판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 52%,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45%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와 30대는 압도적으로 재판 계속을 지지했다. '공정'에 목마른 세대의 선택이었다.
오웰의 경고가 현실이 될 때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풍자로 쓰인 이 구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5월 5일 대법원에 이재명 후보의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로 변경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서울고법은 이에 응했다. 이재명 후보에게는 투표일까지 6차례의 재판이 남아있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모든 재판은 임기 종료까지 정지된다.
마지막 대선이 될지도 모를 6월 3일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법치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는 그 뒤를 따른다. 민주당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법안 통과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을 향한 위험한 진군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법도 바꿀 수 있다"는 선례가 만들어지는 순간, 다음은 무엇이 될까? 선거법? 헌법? 임기?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모든 것이 '필요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면, 6월 3일 대선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대통령 선거가 될지도 모른다.
현대 민주주의 역사에서 법치를 무너뜨린 국가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비참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헌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정한 후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터키의 에르도안은 민주적으로 당선된 후 법과 제도를 하나씩 바꾸며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그들도 처음에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쓰고 있는가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2025년 대한민국은 무엇을 선언할 것인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법 앞에 선다. 단, 대통령은 예외"라고?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민주공화국으로 남을 것인지 선택하고 있다. 6월 3일이 마지막 대선이 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지키는 전환점이 될 것인가?
역사는 항상 특권에 맞서 평등을 외쳤던 이들의 편에 섰다. 800년 전 영국 귀족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지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그 페이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고구마2025-05-12 19:33수정 삭제이렇게 무서운 걸 우리만 알고 우리만 무서워한다는 게 장말 무서워오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