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칼럼] 집 나갔던 정치가 돌아왔다 - 이낙연의 연설을 듣고
윤갑희 기자 2025-04-19 12:24:18
"집나갔던 정치가 돌아왔다."
오랜만에 정치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요즘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들은 대개 듣는 순간 잊혀지거나, 듣고 나면 속이 뒤틀리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런데 이낙연의 연설은 달랐다. 준비된 연설문조차 없이 작은 메모로 진행된 품격있는 연설을 지켜보는 마음은 마치 오랫동안 혼탁한 물만 마시다가 갑자기 맑은 샘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최근 온라인에서 파격적인 조회수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의 연설 (사진=새미래민주당제공)
진정성의 언어와 현실 인식
정치인들은 대개 두 종류로 나뉜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과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 이낙연은 후자였다. "대한민국이 위험합니다"라는 첫 문장부터 불편하지만 정확한 현실 인식을 드러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냥 누군가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심리적인 내전"을 겪고 있다는 표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가족 모임에서도, 친구 만남에서도 정치 얘기는 금기가 된 지 오래다. 같은 밥상에 앉아 있어도 서로 다른 뉴스를 보고, 다른 SNS에서 정보를 얻는다. 내전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이라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다.
권력의 마성과 인간의 약함
"권력은 마성이 있어서 그런 사람마저도 흔들어대는 게 권력입니다." 이 문장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정치학 교과서보다 더 정확하게 권력의 본질을 꿰뚫은 말이다. 경북 안동의 어느 한옥 대청마루에 앉아 느릿하게 차를 마시며 들려주는 노인의 지혜 같았다.
87년 헌법 아래 8명의 대통령 중 4명이 감옥에 갔고, 2명의 아들이 감옥에 갔으며, 1명은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냉정한 통계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유일한 예외였던 문재인 대통령마저 "퇴임 이후 안녕했던 건 아니"라는 말에는 솔직함이 묻어났다. 어느 쪽 진영에 있든 이 말이 사실임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치 개혁의 비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지금의 정치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그러나 해결책을 말하는 사람은 적다. 이낙연은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개헌을 통한 권력 분산, 다당제를 통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 노무현이 꿈꾸었던 중대선거구제를 통한 지역주의 극복.
정치인들은 대개 추상적인 말로 현실을 회피한다. "소통하겠습니다", "국민과 함께하겠습니다", "새로운 정치를 하겠습니다". 이런 말들은 마치 편의점 앞에 걸린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현수막처럼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낙연의 말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었다. 마치 잘 짜인 설계도를 보는 것 같았다.
품격과 기품의 회복
"외롭다고 아무나 손잡지 않겠다"는 말에서 느껴지는 기품은 현재 정치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요즘 정치는 냄비 바닥을 긁는 소리 같다. 날카롭고, 귀에 거슬리고, 듣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이낙연의 연설은 오래된 첼로 소리 같았다. 깊이가 있고, 여운이 남고, 듣고 나면 뭔가 생각하게 만든다.
사법부에 대한 비판, 양당에 대한 비판에서도 품격이 느껴졌다. 쉽게 말해 '욕'을 하지 않았다. 요즘 정치인들의 비판은 대개 인신공격과 욕설에 가깝다. 하지만 이낙연은 사실과 논리로 비판했다. 말하자면 칼을 들이대는 대신 거울을 들이댄 셈이다.
희망의 정치를 위하여
이낙연이 말한 통합형 지도자의 모습은 마치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보물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모질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 덕성이 있는 지도자.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아마도 권력이라는 블랙홀 주변에서는 그런 특성들이 쉽게 왜곡되고 변형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낙연의 연설을 듣고 나니 희망이라는 단어가 다시 정치 어휘 속에 들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을 순진한 일로 치부해왔다. 현실은 냉혹하고, 정치는 더럽고, 그래서 희망 같은 것은 선거 포스터에나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낙연의 연설은 달랐다. 그의 희망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맑은 날 서울의 대기오염을 뚫고 보이는 북한산의 윤곽선처럼, 흐릿하지만 분명히 거기 있는 무엇이었다.
정치가 타락했다고 해서 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바다가 오염되었다고 해서 바다를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다시 정치를 정화해야 한다. 이낙연의 연설은 그 첫 단추를 끼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그가 말한 "제7공화국"은 단순한 헌법 개정 이상의 의미를, 우리 정치문화의 전면적인 쇄신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짓된 위로보다 정직한 진단이 더 가치 있다. 이낙연의 연설은 후자였다. 그리고 그것이 오랜만에 정치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한 이유였다. 체하루도 안되 50만명이 시청한 원외정당 상임고문의 연설에는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충분하다 못해 흘러 넘쳤다. 그 많은 호응과 댓글에 넘치는 반응들은 다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아닐까?
"집나갔던 정치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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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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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ㅇ2025-04-23 18:08수정 삭제이낙연 총리님의 명연설을 맑은 샘물에 비유해주셨는데 공감합니다.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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