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현칼럼] 연정으로 진영의 벽을 허물어라
윤갑희 기자 2025-04-13 17:34:26
우리는 지난 정치사를 통틀어 '연대'나 '연정'이란 단어만 들어도 불편해하는 특별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새미래민주당이 반이재명 연대와 개헌 연정이 열려있다하자 어김없이 일부는 "중도층을 잃는 길"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 비판의 근저에는 우리 정치문화의 경직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정치가 이념의 순수성을 지키는 게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픽=가피우스
독일 연정의 현실적 교훈
독일에선 연정이 낯설지 않다. 오히려 일상이다. 독일 정치사에서 1개 정당이 단독으로 권력을 잡은 경우는 사실상 없었다. 항상 두 개 이상의 정당이 연합하여 국정을 책임져왔다. 이는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라 정치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에서 비롯됐다. 기민당과 사민당 같은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정당들조차 2005년과 2013년에 대연정(Große Koalition)을 구성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당 간 협력이 배신이 아닌 국정 운영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빨강), 자유민주당(노랑), 녹색당(초록)이 모여 '신호등 연정'을 구성했다. 비록 경제 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지만, 이런 실험 자체가 우리 정치 지형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마치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이 함께 정부를 구성한다고 생각해보라. 말도 안 된다고? 바로 그 '말도 안 됨'이 엉망진창이 되버린 우리 정치의 현실을 만든 경직된 진영주의의 현주소다.
진영주의의 편협함
우리 정치의 진영주의는 정치적 상상력을 죽이는 주범이다. 만약 자신이 바라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모든 정책이 완벽할까? 내가 바라는 후보가 실패했다고 해서 상대 후보는 무조건 성공할까? 정치를 스포츠 경기처럼 '우리 팀'과 '상대 팀'으로만 나누는 순간, 우리는 정책과 인물에 대한 객관적 판단 능력을 잃게 된다.
새미래민주당의 전병헌 대표는 "이재명 전 대표는 지난 차악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보다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당선시킨 최대 공로자"라고 했다. 맥락은 다르지만, 이 발언에는 한국 정치가 인물 중심, 진영 중심으로 흘러가는 딜레마가 담겨있다. 마치 정치가 정책의 싸움이 아니라 인물의 선악 대결처럼 비치는 이유다.
연정은 기회다, 위기가 아니다
독일의 연정에서 배울 점은 분명하다. 연정은 "특정 정파의 독선적 정부운영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물론 "정파 간 갈등으로 국정이 중단될 수 있다"는 약점도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은 한국 정치를 관통하는 진영주의가 더 크다는 걸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독일보다 몇배는 국정이 중단되는 일이 더 빈번하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행정부가 제 기능을 못 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연정의 성공 열쇠는 "연정에 참여하는 정파(정당)들 간의 신뢰와 소통, 양보 그리고 합의"다. 바로 이것이 우리 정치에 결핍된 덕목이 아닐까? 정책은 다르더라도 협력할 수 있고, 이념은 달라도 공통의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열린 정치를 향한 제안
새미래민주당이 제안한 '반이재명 개헌연정'을 단순히 정략적 움직임으로만 보는 것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전병헌 대표는 "개헌 연합 세력이 집권하면 즉시 국회와 공동으로 '개헌추진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2028년 이전에 개헌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지 이재명에 대한 반대만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과연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승자독식의 정치인가, 아니면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정치인가? 한 쪽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정치인가, 아니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정치인가?
진영을 넘어선 정치를 꿈꾸며
독일 기민당 소속의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과 대연정을 이루며 오랫동안 독일을 이끌었다. 정책적 방향이 다르더라도 국가의 큰 틀에서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협력한 결과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당 간 경계를 넘어선 정치적 상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미래민주당의 제안이 실현 가능한지, 혹은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됐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한국 정치의 진영 논리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비웃고 비난하는 것은 결국 우리 정치문화의 후진성을 자인하는 셈이다. 정책이 다르고 이념이 달라도 좋은 국가를 만들기 위한 협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독일이 보여준 연정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다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우리 정치문화의 경직성과 진영주의부터 타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그들'과 '우리'의 소모적 대결 속에서 진짜 정치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정치적 상상력의 필요성
어쩌면 새미래민주당의 '반이재명 연대' 제안이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게 아니라는 증거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이재명의 대권을 막아야할 절박함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이 제안의 순수성을 따질만큼 여유롭지 않은게 현실이다. 다만 제안이 촉발한 논쟁은 우리 정치의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왜 우리는 정책과 인물을 분리해서 볼 수 없는가? 왜 이념이 다른 정당 간 협력은 '배신'이 되는가? 왜 우리는 정치를 제로섬 게임으로만 바라보는가?
독일의 연정 사례는 우리에게 다른 정치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경직된 진영주의를 뛰어넘어, 정책 중심의 열린 정치를 모색할 때다. 그것이 진정한 중도층의 뜻을 담는 길이며, 모든 국민을 위한 정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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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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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as2025-04-14 12:02수정 삭제"진영주의의 편협함 우리 정치의 진영주의는 정치적 상상력을 죽이는 주범이다. 만약 자신이 바라는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모든 정책이 완벽할까? 내가 바라는 후보가 실패했다고 해서 상대 후보는 무조건 성공할까? 정치를 스포츠 경기처럼 '우리 팀'과 '상대 팀'으로만 나누는 순간, 우리는 정책과 인물에 대한 객관적 판단 능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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