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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명GPT' 만들다가 '배달특급'꼴 납니다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5-06-23 09:45:18
  • 수정 2025-06-23 10: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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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기술 패권 경쟁은 다른 국가들에게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고 있으며, 그 선택의 결과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재명 정부는 '주권 AI(Sovereign AI)'라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농후한 비전을 국가 전략의 최전선에 내세웠다. 

이 비전은 '디지털 주권' 침해를 막고 기술적 종속을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포장된다.

일종의 'AI 주체사상'이다.


AI정책에 대한 몰이해에 세금이 살살 녹을 위험 (그래픽=가피우스)

딱 잘라 말한다. 범용 거대언어모델(LLM)을 국가 주도로 따라잡으려는 현재의 전략은 천문학적인 비용과 높은 실패 가능성을 동반하는 위험한 도박에 가깝다.

이 전략은 AI 경제의 '진짜 가치'에 대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더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AI에 투입되어야 할 막대한 국가적 자원을 엉뚱한 곳으로 흘려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재명 정부의 AI 전략은 대선  공약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대통령실이 직접 지휘하는 최우선 국정 과제로 격상되었다. 


명GPT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세계 3대 AI 강국 도약'이라는 야심 찬 목표 하에 막대한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한 'AI 고속도로' 구축과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개 이상 확보라는 구체적인 수치가 제시되었다.  

또한 대통령실 직속의 강력한 정책 컨트롤 타워 구축이다. 

대통령실에 AI정책수석 또는 AI미래기획수석 직책을 신설한 것이다. 

이 자리에 네이버 AI 혁신센터장 출신의 하정우 수석을 임명한 것은 정부의 AI 정책 방향성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다. 

하 수석은 네이버 재직 시절부터 글로벌 기업에 대한 기술 종속을 피하기 위해 독자적인 파운데이션 모델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권 AI'의 중요성을 꾸준히 역설해 온 인물이다.


어쩐지 느낌 쎄하지?

그렇다. 인터넷의 공유정신과 반대로 가는 네이버의 '정보 가두리 양식장 모델'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KT와 같은 다른 대기업들은 마이크로소프트, OpenAI 등 글로벌 빅테크와 손잡고 그들의 모델을 기반으로 한국형 서비스를 개발하는 '동맹(alliance)' 전략을 추구해왔다.  


그 뿐인가? 국가 주도형 AI는 중국산 AI인 deep seek의 정치적 편향성을 떠오르게 한다.

그토록 성능 좋다는 딥식이에게 '천안문 사태'에 대해 물어보면 갑자기 바보가 되어 버린다.

그 '명GPT'에게 다섯개 사건, 12개 혐의, 7개 재판에 대해 질문을 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Sorry, that's beyond my current scope. Let’s talk about something else.'


척척박사 딥식이에게 천안문 사태를 물어보면 천하의 바보가 되어버린다.


냉정하게, 국내 AI 모델들은 설 자리가 없다 

미안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현재 글로벌 AI시장의 수준은 뭐라 말하기도 어렵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간에도 대체 어떤 혁신이 일어나는지 일일이 체크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OpenAI의 GPT-4o, 구글의 Gemini 1.5 Pro, 앤트로픽의 Claude 3 Opus와 같은 최상위 모델들은 추론, 코딩, 창작 능력뿐만 아니라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를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모달(multimodal) 기능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인다. 

이처럼 강력한 성능을 가진 AI를 사용하는 비용이 글로벌 빅테크 간의 치열한 '가격 전쟁'으로 인해 "터무니없이 저렴(stupidly cheap)"해졌다. 


그래서, 전국민 AI 바우처를 뿌리겠다는 천재적인 아이디어!

이러한 경쟁력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전국민 AI 바우처'와 같은 정책을 고려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는 사실상 경쟁에서 밀리는 제품을 위해 인위적으로 시장을 만들어주는 보호주의적 조치에 불과하다. 


국산품 애용? 눈물 난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미 수백개의 AI 중에서 매일 매일 조금이라도 더 성능이 좋은 놈들로 비교하며 갈아타고 있다. 이들은 일정 기간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그걸 쓰다 보면 또 새로운 놈들이 출현한다. 또 갈아탄다.


AI 바우처 예산? 기업들의 보조금으로 귀결될 것이다. 

여기에 또 혈세가 쓰이는 것이다. 혁신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또 누군가를 위한 이너서클의 일자리 비용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그래서, AI 식민지가 되라는 말인가?

이러한 전략적 오류는 AI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글로벌 AI 시장은 이미 '직접 만들 것인가(build) 아니면 사서 쓸 것인가(buy)'의 낡은 패러다임을 넘어, '기초(foundation)와 응용(application)'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 


OpenAI/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앤트로픽과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자신들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AI 경제의 기반이 되는 '유틸리티'나 '운영체제'로 만들기 위해 막대한 가격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진정한 경제적 가치와 혁신은 이 강력하고 저렴한 파운데이션 모델 위에서 특정 목적에 맞는 전문화된 도구를 만드는 '응용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는 법률, 의료, 금융 등 각 분야에서 AI 전문 기업들이 글로벌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현상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대법원이 최근 판례 분석 등을 위한 법률 AI서비스를 구축중 이라는데, 이런 것이 올바른 투자이다. 


더 쉽게 설명해보자. 삼성은 모바일의 운영체계(OS)인 타이젠을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필요한 시도였다. 그러나 어느 타이밍엔가 OS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다면 앱(응용)이나 디바이스(휴대폰)을 잘 만드는 것이 전략이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때 늦은 '기초'분야를 파는데 혈세를 낭비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에너지 대책은 있고?

AI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비유될 만큼 막대한 양의 전력을 소비한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30년까지 현재의 두 배 이상인 945TWh(테라와트시)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며, 이 증가분의 대부분은 AI가 차지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데이터센터가 2030년까지 전력 수요 증가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수 있으며 , 2035년에는 미국 전체 전력의 8.6%를 소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AI연산에 사용되는 하드웨어의 폭발적 진화 때문이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를 공식적으로 폐기하지 않았으며 , 이는 안정적인 기저 전력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365일 중단 없는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수적인데,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며, 이에 대한 논란은 지난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실컷 보셨을 테니 이만 생략하겠다.


아마 정부가 공언한 5만 개 규모의 고성능 GPU 확보 역시 맘대로 안 풀릴 것이다. 


대안이 뭔가? 
앞서 대법원 사례를 들었듯, AI의 기초분야(범용 LLM 등)가 아니라 응용분야로 나아가 틈새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미 한국의 많은 기업이 이 길을 걸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의료 AI 분야가 대표적이다. 루닛(Lunit)과 뷰노(Vuno)는 AI 기반 의료 영상 분석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들의 성공은 범용 LLM을 개발해서가 아니라,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학습시킨 특화 모델을 통해 암 진단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 시장에서 벌어들이며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리걸테크(Legal Tech)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트업들은 한국 법률 시스템의 고유한 복잡성을 파고들어 틈새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엘박스(LBox)는 AI 기반 판례 검색 서비스를, 로앤컴퍼니(Law & Company)는 '슈퍼로이어(SuperLawyer)'와 같은 법률 문서 요약 및 초안 작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들의 가치는 글로벌 거대 모델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한국의 법률 데이터와 업무 절차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금융 AI(Fintech) 분야의 혁신도 눈부시다. 신한, KB, NH와 같은 시중은행과 카카오뱅크, 토스 같은 핀테크 기업들은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신용평가모델, AI 뱅커, 업무 프로세스 자동화 등 매우 구체적인 영역에 AI를 공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AI에 대한 비전을 선의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기술 주권'이라는 낡은 시각으로는 아마 100조면 100조, 1천조면 1천조 모두 '세금이 살살 녹는', 그러면서도 아무도 쓰지 않는 괴상한 명GPT를 만드는데 그칠 것이고 그땐 지지율도 모두 녹아 사라져 있을 것이다.

경기도 지사 시절 만들었던 배달앱 '배달특급'처럼 말이다.


* 이 컬럼은 한 독자의 제안과 제보를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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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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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p772025-06-23 11:32:19

    숨이 턱턱 막히네요. 우리나라 어케하냐 진짜..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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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kdan092025-06-23 11:22:25

    네이버랑 정부랑 서로 셰셰하겠다는 소리. 성능은 못 따라잡아 시장 경쟁력은 없고 국민들 혈세만 살살 녹이겠다는. 여기에 안보이는 돈이 또 어디로 셀까??? 4대강 보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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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n19712025-06-23 10:35:55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놈이 무식한데 신념을 가진놈이라고 했죠. 이 무식한놈이 조또 모르는건 많은데 신념을 더러운 성격으로 밀어붙인다는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 나라를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뜨리기 전에 속히 끄집어 내려야 하는데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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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23 10:18:18

    아 진짜 이런데 세금 쓰지 말라고 좀 ㅠㅠㅠ 사대강보다 더 하잖아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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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yul642025-06-23 10:17:18

    섬뜩하지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너무 걱정이 많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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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ongaphee2025-06-23 10:12:09

    guest/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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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23 10:05:30

    우와! 촌철살인!!

    근데 오타찾음 ㅋㅋ
    그러나 어느 타이밍엔'게' OS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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