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불의가 아니라 불의에 대한 무감각이라는 사실을.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이 생각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의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물리 법칙이 뒤바뀐 세계를 본다.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데 재산이 늘어난다. 중력을 거스르는 사과처럼, 그의 돈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위로 솟구친다.
2020년부터 5년간 김민석 후보자가 받은 국회의원 세비는 5억 1,800만원이다. 지출은 10억 6,400여만원. 차액만 5억원이 넘는다. 그런데 이 기간 그의 재산은 오히려 5억원 늘었다.
산술은 냉정하다. 13억원 이상의 '보이지 않는 소득'이 존재해야 이 마법이 가능하다. 김 후보자는 "부의금과 강연료"라고 했지만, 연말정산 자료는 사업소득 800만원, 기타소득 620만원만 보여준다. 1,420만원으로 8억원의 수수께끼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모래알로 성을 쌓으라는 말과 같다.
나는 이 숫자들을 몇 번이고 다시 계산해봤다.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의 돈은 밤사이 저절로 불어나는 마법의 콩나무였다.
더 주목해야할 장면도 있다. 그의 아들이 연간 1억원의 교육비가 드는 미국 코넬대학에 다닌다는 사실이다. 청심국제고등학교를 거쳐 아이비리그로 이어지는 이 루트는 우연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막대한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김 후보자는 자신의 재산을 2억 1,500만원으로 신고했다. 그런데 아들의 1년 교육비가 그 재산의 절반에 달한다. "전처가 교육비를 부담했다"는 해명이 나왔지만, 이혼 후에도 자녀 교육비는 양부모가 나누어 지는 것이 상식이다.
매년 수천만 원을 신용카드로 긁어댔다는 기록도 있다. 국회의원 월급으로 어떻게 이런 초고소비가 가능한가. 그의 카드 명세서는 한 편의 소설 같다. 제목을 붙인다면 '위대한 개츠비의 한국 버전' 정도 될까. 아마도 총리가 되어 그의 노하우를 국민들에게 가르친다면 한국은 기름 한 방울 안나는 산유국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불로소득 구조를 들여다보면 섬뜩하다. 상위 10%가 배당소득의 94%, 이자소득의 91%를 독식한다. 이들에게 돈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새끼를 치는 토끼다. 밤새 번식해서 아침이면 우리 안이 가득하다.
대다수 국민은 다르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내 집 마련이 버겁다. 땀 흘려 일해도 물가 상승을 따라잡기 어렵다. 김민석 후보자의 사례는 이런 불로소득 구조의 극단적 사례다. 그는 '어디선가' 생겨난 돈으로 일한 돈보다 더 많이 살고 있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해서 버는 돈을 그는 점심 한 끼 값으로 쓸지도 모른다. 이런 격차 앞에서 "열심히 살면 된다"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가.
정부는 사실 개인이 빚을 내서 뭘 사든 별로 관심 없다. 대출받아 외제차를 사거나 명품백을 사도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소득이 발생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소득은 곧 세금이고, 세금은 국가의 핵심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김민석 후보자가 위험한 줄타기를 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현금으로 받아 숨겨두고 쓰든, 가상계좌를 이용하든 소득을 숨기는 방법은 있다. 하지만 총리라는 최고위직에 오르려면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는 권력욕 때문에 스스로 함정에 빠진 셈이다. 숨어 있을 때는 안전했던 비밀이 무대 위에 서는 순간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김민석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국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의혹투성이 인물을 총리로 앉히는 것은 국민 정서와 정면충돌한다.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이 무색해진다. 처음이니까 "합니다"로 밀어붙여도 되겠지라고 여기기엔 국민의 시선이 너무 차갑다. 국민의힘이 자금 거래 내역 공개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인사청문회장에서 김민석 후보자가 어떤 해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그는 13억원짜리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갖고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마법을 보여줄까.
김민석 후보자의 초고소비는 일반 국민들에게 강렬한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 어떤 이는 소득 없이도 소비하고, 어떤 이는 소비를 줄여도 빚이 는다. 이런 극단적 격차는 사회를 갈라놓는 독이다.
더 참담한 것은 그의 해명이다. "세비와 기타소득을 생활과 채무변제에 쓰고 나머지는 거의 헌금으로 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많은 헌금의 원천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소득에서 나온 헌금이라면, 그것은 헌금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경제학자들은 GDP나 성장률 같은 거시지표를 이야기하지만, 진짜 경제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벌어진다. 김민석 후보자가 하루에 쓰는 돈이 평범한 직장인의 한 달 월급보다 많을 때, 그것은 개인의 소비 행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가 된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말에서 '경제'는 바로 이런 의미다. 경제만 잘 돌면 다들 OK라는 뜻이 아니라 국민들이 불공정을 느끼고 그게 또 다른 누군가의 박탈감으로 이어질 때, 그것은 사회적 갈등의 화약고가 된다.
이런 갈등은 수치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명품백을 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아파트 가격을 확인하며 한숨 쉬는 소리, 자녀 교육비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 이 모든 것이 경제의 진짜 얼굴이다.
김민석 후보자는 이제 자신만의 미로에 갇혔다. 총리가 되고 싶어서 들어간 미로지만, 이제는 빠져나올 수 없게 됐다. 그의 가계부는 현대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마법의 나라.
하지만 이것은 동화가 아니다. 실제 현실이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계산기를 몇 번이고 두드려봤다. 혹시 내가 잘못 계산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13억원의 수수께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불의에 대한 무감각이 가장 위험하다고 했지만, 다행히 국민들의 감각은 아직 살아있다. 김민석 후보자 논란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가 누려온 불로소득과 초고소비, 그 화려한 마법쇼는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